[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58] 키신저에 대한 기억

얼마 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키신저에 대한 기억은 나라별로 조금씩 온도차가 있는 듯하다. 키신저가 생전 100회 이상 방문했다는 중국은 그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시진핑 주석이 나서서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이자 좋은 친구”인 그의 이름이 “중·미 관계와 영원히 연결되어 남을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키신저의 눈부신 활약(?)으로 유엔에서 축출되며 외교적 입지가 좁아진 대만에서는 그를 회고하는 기억에 착잡함과 섭섭함이 담겨있다.
일본에서는 키신저에 대한 ‘빛과 어둠’의 기억이 있다. 미·중 데탕트에 힘입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 빛의 기억이라면 오키나와 핵무기 반입 밀약은 어둠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1972년 오키나와 반환에 따라 그곳에 배치된 모든 핵무기를 철수한다는 것이 양국 간 합의였다. 그러나 합의 이면에 유사시 오키나와에 핵무기를 반입할 수 있는 양해가 정상 간에 극비리에 교환되었음이 훗날 드러났다. 사토 총리의 비핵 3원칙 노벨평화상 수상을 무색하게 하는 이 밀약을 주도한 이가 닉슨의 복심(腹心) 키신저였다. 일본에서는 그에 대해 ‘밀실 외교의 화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도 키신저 외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나라다. 그가 닉슨과 2인3각으로 밀어붙인 닉슨 독트린, 미·중 데탕트 등은 한반도 안보 환경에 일대 변화를 초래하는 중대 사안이었으나, 정작 동맹국인 한국은 논의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새 친구를 만들기 위해 오랜 친구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야기된 불신은 한국에 유신 체제가 들어서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도덕이나 의리에 구애받지 않는 현실주의를 중시하며 세력 균형, 이이제이, 각자도생 등의 권모술수에 능한 지도자와 책사가 초강대국의 외교를 좌우하면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 키신저의 기억이 전하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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