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참상은 못 막지만 기억하게 할 힘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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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책을 쓰기 전까지 '늑대의 아이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역사에서 잊힌 이야기였죠."
"'늑대의 아이들'은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했죠. 소설이 출간된 뒤에야 인정받았고, 이들은 비로소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소설 덕에 리투아니아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늑대의 아이들'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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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그림자…’ 국내 출간
전쟁 탓 파괴 아이들 삶 그려
리투아니아 작가 알비다스 슐레피카스(57·사진)는 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달 6일 국내에 출간된 장편소설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양철북)는 리투아니아에서도 생소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 끝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었던 동프로이센 고아를 뜻하는 ‘늑대의 아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동프로이센은 과거 독일의 영토였으며 지금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일부 지역이다. 1944년 이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이 독일인을 살해하고 핍박한 뒤 1만 명의 고아가 발생했다. 하지만 독일인이 피해자인 탓에 기억에선 지워졌다.
슐레피카스는 1996년 처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늑대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15년에 걸쳐 취재하고 집필해 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이 소설을 펴냈다. 그는 “살아남은 ‘늑대의 아이들’을 만나 설득했다. 오래된 증언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소설엔 ‘늑대의 아이들’의 피폐한 삶을 날것 그대로 담았다. “독일인이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죽여라!”라고 외치는 소련 군인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떨며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렸다. 그는 “전쟁은 전장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인뿐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의 삶까지도 파괴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역사 속에서 잊힌 비극을 흔들림 없이 묘사했다”며 그해 ‘최고의 새로운 역사소설’로 평가했다. 슐레피카스는 “‘늑대의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었다. 대부분 노예처럼 일하고, 나치 독일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하며 살았다”고 했다.
“‘늑대의 아이들’은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했죠. 소설이 출간된 뒤에야 인정받았고, 이들은 비로소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소설 덕에 리투아니아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늑대의 아이들’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소설로 리투아니아에서 ‘국민 작가’로 불리게 됐다. 주한독일문화원 초청으로 이날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리투아니아의 국가명은 리투아니아어 ‘lietus’(비)와 관련 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주한독일문화원에서 한국 독자를 만나니 운명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죽고 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희생되는 걸 보면 정말 끔찍합니다. 여전히 ‘늑대의 아이들’이 발생하는 거죠. 물론 어떤 문학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지 못해요. 하지만 참상을 기록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었다는, 고통받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죠. 정치와 경제가 하지 못하지만,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건 기억하는 것 아닐까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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