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종훈 선생의 호를 딴 ‘정암로’

허행윤 기자 2023. 12.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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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다. 한평생을 일본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데 매진했다. 독립운동가 정암(正菴) 이종훈 선생의 일생이 그랬다.

선생의 생애로 좀 더 들어가 보자. 1858년 2월9일 경기 광주에서 출생했다. 고난의 청년시절을 거쳐 25세 때 동학에 입교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선두에서 깃발을 높이 들었다.

1898년 순교한 최시형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2년 귀국해 부국강병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1919년 2월25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1운동 때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22년 7월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고려혁명위원회 고문에 추대돼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선생의 호를 딴 명예도로가 그의 고향에 생겼다. 광주시가 곤지암읍 만삼로 모든 구간 도로명을 ‘정암로’로 지정(경기일보 5일자 11면)했다.

명예도로는 지역사회 헌신도와 공익성 등을 감안해 법정도로명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전국에는 지자체 89곳에 217곳의 명예도로가 있다.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서울 용산구의 ‘유관순길’과 정지용 시인의 문학정신을 잇는 은평구의 ‘정지용길’ 등이 대표적이다.

정암로 명예도로명 부여는 광복회 청원으로 비롯됐다. 광복회는 앞서 지난 2월부터 추진에 나섰다. 타 기관이 명예도로명 부여를 요청하면 해당 기초지자체는 공익성을 검토한 뒤 주소정보위원회 심의를 거쳐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시는 내년 3·1절 기념 행사도 정암로 일원에서 3·1 만세운동 재현을 위한 거리 행진 및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다.

이 대목에서 뭔가 허전하고 씁쓸하다. 명예도로인 ‘정암로’에 대해 주민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의 호를 땄다는 사실도 말이다. 명예도로 지정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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