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산책] 안타까운 전쟁, 왜 멈추지 못할까

김창규 2023. 12. 8. 00: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인간은 왜 전쟁을 끊지 못할까? 조금 나아지는가 싶은 착각이 들기 시작하면 마치 금단증상처럼 세계의 뉴스 창에 전쟁의 발발과 전개가 주요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한참 유행하던 책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특징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민족·체제·이데올로기· 종교 모두 물리적인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도 못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쟁하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김창규 변호사

인간은 왜 전쟁을 끊지 못할까? 조금 나아지는가 싶은 착각이 들기 시작하면 마치 금단증상처럼 세계의 뉴스 창에 전쟁의 발발과 전개가 주요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한참 유행하던 책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특징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중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국가,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 화폐 등이 있다.

지금 진행되는 전쟁 중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민족·체제 등이,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은 종교·민족 등이 표면상 이유인 것 같다. 그런데 민족·체제·이데올로기· 종교 모두 물리적인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도 못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쟁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삶에는 더 깊은 이유들이 있고, 생명을 포기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점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전쟁 전개는 너무나 안타깝다.

노벨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책을 보면, 전쟁 속 참혹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어 글씨를 읽고 있음에도, 어떤 때는 눈 뜨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여자가 이데올로기와 국가, 민족을 위해, 독소 전쟁에 참전해 심지어 저격수, 전투병으로까지 싸우면서 깊은 긍지를 갖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많이 놀라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 전쟁을 끊지 못하는지, 무엇이 인간에게 처절한 신념을 가지고 살게 하는지 안타깝다. 수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던 이스라엘이나, 뜬금없이 수천 년을 살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이나, 러시아가 무서워서 서유럽과 친해지고자 하는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가 돌아서면 코앞에 주적을 마주할 수도 있게 되는 러시아나 모두 제각각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살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상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상대의 이유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서로 평화의 시기로 나아갈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겠다.

가끔 무섭다. 저런 전쟁이 지금은 멀리서 벌어지고 있지만 혹시 한반도로 전염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 역시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에서 남한은 아직도 레드콤플렉스로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고 북한은 어려운 국가체제의 유지를 위해 서로 조금도 이해와 포용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갑자기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소중한 가족과 이웃들이 불타는 땅 위에서 절규할지 알 수 없으니 걱정에 걱정이다.

이를 넘어서는 방법은 유치원 아이도 아는 것처럼 사랑이다. 사랑만이 전쟁을 넘어서고 가까이에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를 벗어나게 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사랑과 희망은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 사회를 보면 어느 진영이나 관용과 타협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일부러 극단적 표현을 하고 이를 통해 상대를 자극하고 패거리를 만들려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붕당정치가 아닌 정당정치를, 배타적 종교가 아닌 사랑의 종교를, 싸우는 이웃이 아닌 이해와 포용하는 이웃이 되어, 모두가 신경증적인 삶을 그만 살고,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면 좋겠다. ‘실제로 모두의 삶에서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면 좋겠다.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