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손효림]손으로 뭔가 해내는 경험, 삶에 생기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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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구멍 난 양말을 기우는 데 선수였어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83)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남자도 요리, 빨래, 바느질, 청소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르 클레지오 역시 "남자도 어릴 때부터 요리, 장보기, 청소를 해야 한다. 엄마나 아내 등 여성에게 시키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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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필요한 작은 기술, 자신감 만드는 동력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83)가 웃으며 말했다. 올해 10월 한국을 찾은 그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아버지는 ‘남자도 요리, 빨래, 바느질, 청소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피아니스트인 어머니가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집안일을 맡아 했다고 한다. 르 클레지오 역시 “남자도 어릴 때부터 요리, 장보기, 청소를 해야 한다. 엄마나 아내 등 여성에게 시키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영사기를 돌려 5분 정도 분량의 영화도 많이 보여줬다.
“필름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돌리며 속도에 따라 변화하는 재미를 느꼈죠. 필름을 뒤로 돌려보기도 하고요. 어릴 적에 영상을 촬영해 시사하는 게 제겐 중요한 일이었어요.”
르 클레지오의 예술적 감성은 이런 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란 것 같다. 생활에 필요한 일을 제 손으로 하며 성장한 소년은 부지런한 작가가 됐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에도 꾸준히 집필을 이어가는 그는 유년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을 올해 10월 국내 출간했다. 서울, 제주와 우도를 직접 두 발로 누비며 집필한 소설 ‘폭풍우’, ‘빛나: 서울 하늘 아래’도 2017년 각각 발표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종류별 음식은 물론 장보기, 청소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다.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고도의 편리함 속에서도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일을 일부라도 자기 손으로 하는 건 자신감을 갖게 만든다.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기술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쓴 황보름 작가는 오랜 기간 기약 없이 글을 썼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다 긴 시간 전업 작가로 지냈고, 지난해 1월 이 책을 출간했다. 그가 마흔 살이 넘어 독립해 혼자 살게 되면서 세운 규칙은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직접 해먹기’였다. 올해 10월 출간한 에세이 ‘단순 생활자’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도마에 파를 올려놓고 어슷썰기를 한다는 건 나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끝까지 망가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나에겐 있다. … 다른 건 다 망친 하루라도 김치볶음밥 하나 맛깔나게 잘 만들어 먹었다면 그날은 뭐라도 하나 한 거다’라고 썼다. 이런 하루가 쌓이다 보면 끝난 것 같은 삶도 다시 열린 문 앞에 서게 된다는 것.
빛나는 성취보다는 크고 작은 좌절을 겪는 경우가 더 많은 게 대부분의 인생살이다. 거친 바람에 깎이고 속이 텅 비어 버릴 때마다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를 붙들어 주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 모른다. 내가 누리는 건 내가 할 수 있다는 확신. 사소한 것이라도 가족이나 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단단하게 살아갈 힘이 생길 수 있다. 그 힘은 스스로 일어서게 하고, 바지런히 움직이게 만드는 원천이 될 것이다. 삶의 동력은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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