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리 수용해 중화주의 탈피… 日도쿠가와 지식인들[박훈 한국인이 본 일본사]

비주류 머문 일본의 중화론자들

그러나 일본의 지식계에서 이런 관점은 끝내 주류가 되지 못했다. 많은 지식인들은 국가라는 단위를 중시하고, 일본을 그저 자기 나라라는 이유로 추켜세우려는 경향이 확산되었다.(박훈 ‘18세기 말∼19세기 초 일본에서의 ‘戰國’적 세계관과 해외팽창론’) 야마가 소코(山鹿素行)는 사람들이 “일본은 소국이기 때문에 중국에는 모든 것이 미치지 못하고, 성인도 중국에만 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들에만 한하는 것이 아니라, 고금의 학자가 모두 그렇게 생각하여 중국을 흠모하고 배워 왔다. 근자에 처음으로 이 생각이 잘못임을 알았다.”(山鹿素行 ‘配所殘筆’)라며 지식계의 중국 숭배를 비판하고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일본이 중국보다 우월하다고 제시한 이유가 흥미롭다. 중국은 국경이 오랑캐들과 접하고 있어 방위가 곤란하고, 그 때문에 만리장성 건설 노역 같은 것으로 백성을 괴롭히고 있는 점,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점, 만세일계(萬歲一系)의 천황을 갖고 있는 일본과 달리 정치적 변동이 잦은 점 등이다. 즉, 군사적 우월성, 황통의 안정성 등을 그 이유로 삼고 있는데, 이것들은 앞에서 본 후지와라의 성신·안민 같은 가치 기준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었다.
일본 자국 이익이 우선

세계지도 보며 일본 위치 직시

야마자키의 문하생 아시미 게이사이(淺見炯齋·1652∼1711)는 “무릇 하늘은 땅을 감싸고 땅은 하늘을 받들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각각 그 지역의 풍속이 미치는 곳은 각자 나름의 천하이니 존비귀천 같은 것은 없다”(‘中國弁’)며 국가 간의 대등성을 주장했고, 따라서 중국을 중화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거꾸로 일본을 중화라 하고 중국을 오랑캐라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자국, 타국을 부를 때는 그저 오국(吾國), 이국(異國)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쿠가와 시대 일본 주류 지식인들의 국제관은 크고 작은 나라들이 나뉘어 존재한다는 만국병립론이었다. 당시 일본에 약 270개의 봉건국가가 병립해 있는 실정은 이런 이미지를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국 중에 일본은 얼마나 훌륭한 나라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논의도 등장했다. 19세기에 들어 안보위기 의식이 커지자 만국병립론은 만국대치론으로 급속히 바뀌어 갔다. 단순히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패권을 노리며 할거·대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불과(!) 200, 300년 전 자기 땅에서 실제로 전개되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1467∼1573년)를 떠올리게 했으며, 당시 지식인들은 실제로 이를 전국시대의 재래(再來)라고 파악했다. 잠재해 있던 일본의 선민의식은 이때부터 폭주하기 시작하는데, 국학(國學)과 미토학(水戶學)이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본 칼럼에 이미 쓴 바 있으니, 참조해주시기 바란다.(2023년 8월 18일자)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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