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엑스포 빼앗긴 바다에도 봄은 오는가
지속 가능한 삶 방향 제시 미흡
IT·콘텐츠 강국 기대감 부응 못해
‘119 대 29’ 너무 충격적 투표 결과
인류가 당면한 최대 과제 ‘기후’
현 정부, 원전 늘리며 큰 흐름 역행
잼버리 파행에 안전관리능력 흠집
안보 긴장 강화 속 최종 PT도 부실
‘노인과 바다’만 남은 지금의 부산
새로운 정체성 찾기 절실한 시점
청정 스마트 물류 도시로 나아가야

“요즘 부산엔 ‘노인과 바다’밖에 없다.”몇해 전 명절 고향인 부산에 갔을 때 가족들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카페와 관광객은 늘어나는데 부산의 젊은이들은 계속 부산을 떠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부산시민들이 엑스포 개최를 그리도 염원했던 데에는 이런 현실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2030 엑스포 개최지 최종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다소 비관적이었던 내게도 119 대 29라는 숫자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 고향이 아무리 못나도 세계인들로부터 그 정도 표밖에 못 받을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1년 전쯤에 세계적인 아이돌그룹 BTS가 부산에서 엑스포 유치기원 공연을 연다고 했을 때 전 세계가 난리였다. 처음에는 기장군 일광읍의 옛 공장부지에서 10만명 규모의 공연을 한다고 해서 크게 논란이 있었다. 진입로도 좁게 하나뿐이고 여타의 부대시설도 없는 상태라 안전 문제부터 불거졌다. 결국 공연장은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0월15일 공연이 만약 예정대로 거기서 강행되었더라면, 꼭 2주 뒤 핼러윈 때 서울 이태원에서 있었던 참사가 부산에서 먼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10만명 규모의 하루 공연준비도 이렇게 엉망인데 어떻게 수개월에 걸쳐 수천만명이 몰리는 엑스포를 준비하겠다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일광의 부지를 떠올리게 한 건 개최지 투표 직전에 있었던 우리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부산시장이 나선 프레젠테이션은 전체적으로 학예회 수준이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특히 마지막 30여초 영상에 비난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알 만한 유명한 사람들이 잔뜩 등장한 영상에서, 오히려 그 어떤 출연자보다 더 유명한 BTS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아름다운 내 고향 부산의 모습은 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부산을 홍보하는데 ‘강남스타일’이라니. KBS 뉴스에서 친절하게 계산해본 결과 총 30여초 분량의 영상에서 부산의 모습은 단 9초 정도 나왔다고 한다. 그 영상을 포함해 지난 6월 4차 프레젠테이션 영상과 리셉션 등에 무려 50억원 이상을 썼다는 소식도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사실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잘한다고 해서 판세가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기간의 벼락치기 공부로 잠깐 눈가림을 한다고 통할 일이 아니다. 한국은 이제 어엿한 선진국이고 세계무대에서 그 존재감이 작지 않은 선도적 중견국가이다. 이미 IT 강국으로 유명한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한류라는 강력한 문화콘텐츠의 힘으로 소프트파워 강국의 면모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렇게 앞선 기술력과 소프트파워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팬데믹 초기 우리의 신속한 검사키트나 드라이브스루 검사 방식이 얼마나 큰 찬사를 받았던가. 유엔이 BTS 멤버들에게 유엔총회 연설을 맡긴 것도, 바이든이 이들을 백악관에 초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부산엑스포 유치과정을 돌아보자면 아쉬운 점이 많다. 20세기 초반까지 엑스포는 과학기술의 성과를 선보이고 교류하는 장을 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인류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으로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지금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단연 기후위기이다. 친환경, 저탄소, 에너지전환 등이 엑스포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 부산엑스포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이나 인류를 위한 기술을 주요 메시지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얼마나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노력해왔을까?
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탄소감축을 위한 노력이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었다. 그럼에도 뒤를 이은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는 전 정부와 같으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큰 산업부문의 감축목표를 14.5%에서 11.4%로 줄였다. 그만큼 다른 분야에서 고통을 더 크게 분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규모가 더 커졌는데, 정부안에 따르면 원전비중이 2030년 32.4%(2022년 29.6%)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1.6%(2022년 8.9%)보다도 훨씬 더 높아진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 정반대의 흐름이다. 전 세계 총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9.8%에 불과하다. 반면 풍력과 태양광의 비중은 10.2%로 이미 원전을 앞질렀다. 태양광 발전단가가 원전의 발전단가보다 더 높은 것도 한국이 예외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탄소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비중을 40%로 늘려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엑스포 경쟁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떨까. 널리 알려졌듯이 빈살만 왕세자의 비전2030을 통해 석유 이후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나섰다. 사우디의 비전2030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력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무려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엑스포에서 친환경 저탄소의 기치를 똑같이 내걸었을 때 과연 제3자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윤석열 정부의 전반적인 안전관리능력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부 외신에서는 잼버리 파행을 엑스포 참패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155개국이 참가해서 직접 겪은 아수라장이었던 만큼 소문도 널리 퍼졌을 것이다. 작년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니 잼버리 참사를 일회성의 우연한 파행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외국인들이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작년과 올해 여름마다 반복된 수해와 인명피해, 최근에 있었던 행정망 장애 등도 윤석열 정부의 안전관리능력을 의심하게 한다. 평소의 준비되지 않은 무능함이 이태원과 잼버리, 그리고 이번 엑스포 참사로 이어진 것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사실 안전관리능력의 가장 큰 시험대는 한반도 안보상황이다. 북한 무인기에 서울 상공이 뚫리는가 하면, 대통령실이 도청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북한 미사일에 대응발사한 현무-2C 미사일이 역주행해 우리 군 기지에 떨어지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새 정부 들어선 이후로 한반도의 평화가 진전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힘을 비축하는 것과 휘두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지금은 북한과의 무력충돌이나 심지어 핵전쟁까지 여기저기서 언급되고 있다. 윤 정부가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공조에 북한이 겁을 먹고 핵무기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러시아와 밀착하며 발사체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동해’라는 명칭까지 포기하며 벌이는 한·미·일의 합동군사훈련이 평화를 공고히 하기보다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인 긴장만 높이고 있다. 그 와중에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반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렇게 군사적인 긴장이 높아지는 나라에 세계 사람들이 굳이 엑스포를 구경하러 오고 싶을까. 엑스포의 기본정신은 평화와 공존, 교류이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분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서 엑스포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정전협정을 종전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아직도 수많은 외국인들은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 중인 휴전상태라는 이유만으로 방문을 꺼리고 있다.
정세가 불안한 것은 사우디가 있는 중동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빈살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 국교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사우디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지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수교논의가 중단된 상태지만 적어도 빈살만 체제의 사우디는 계속해서 수교를 추진할 것이다. 민족과 종교가 다른 나라끼리도 이렇게 새로 국교를 수립하는데 같은 민족인 우리와 북한은 왜 아직도 정전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걸까. 종전보다 정전상태를 더 좋아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이런 나라에서 개최하는 엑스포에 가고 싶을까.
부산은 천혜의 항구도시이고 한반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항만물류도시이다. 부산에는 항만만 있는 게 아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출발하는 곳이고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설 예정이고 KTX의 종착역이 있는 곳이다. 만약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철길을 연결한다면 유럽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 부산엑스포를 관람할 수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한편 지금 인류가 직면한 큰 이슈는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디지털 전환이고 그 선두는 지능을 디지털화한 인공지능이다. 기후위기의 돌파구는 에너지전환이다. ‘세계의 대전환’은 부산엑스포의 테마이기도 하다. 이 셋을 한데 모으면 부산은 지능형 청정 물류중심지로 탈바꿈하는 것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어울려 보인다. 인공지능을 위시한 스마트 기술이 물류를 통합적으로 제어하고 청정에너지로 도시와 물류가 돌아가는 새로운 전범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는 운송과 일상생활 등 이미 전 분야에서 청정수소로 에너지를 대전환하는 길에 접어들기로 했다. 부산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엑스포가 끝나면 그 부지에 관련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싼 돈 들여 해외순방하면서 무려 100조원이 넘는 해외투자를 약속한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 돈으로 핵심 제조업을 국내에 늘려나가는 것이 글로벌 밸류체인이 끊겨나가는 지금의 시대에 더 시급해 보인다. 그렇게 양질의 일자리를 지방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엑스포를 끝내 유치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노인과 바다’만 남은 부산을 다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도시로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종필 교수
![]()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심장 약한 사람은 못 버텨” 월가도 혀 내두른 국장, 개미는 ‘영끌·더블’로 산다
- 300m 줄 서서 30분 대기···기름값 오를 때 ‘저가 행사’ 나선 대전 최저가 주유소
-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 사임…충남지사 선거 도전장
- [속보]법원, 배현진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국힘 서울시당위원장 복귀
- “1억을 넣으면 150만원이 따박따박?…ETF도 원금 손실 유의해야”
- ‘계양을’ 출마 희망 송영길, 정청래 만나 “당의 결정 따르겠다”
- 420만달러 어뢰 한 발로 이란 군함 격침···미, 81년 만에 잠수함 공격
- ‘사법개혁 3법’ 국무회의 의결···청와대 “국회서 의결된 만큼 공포가 바람직”
- 이상할만큼 인기척 없던 이웃집···고향 찾은 해경과 배우자, 쓰러져 있던 모녀 구조
- 미 상원, ‘이란 공격 중단’ 결의안 부결…트럼프 제동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