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짓고 도민이 지킨 ‘고씨 주택’

박미라 기자 2023. 12. 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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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근대 건축물…도시재생센터 ‘우수건축자산’ 등록
제주 전통 안채·바깥채 형태에 기와·창호 등 일본 양식 첨가
재정비 사업서 주민들 철거 반대…동네 사랑방·관광명소로
1949년 건축된 고씨 주택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거리(오른쪽 가옥)와 밖거리가 배치된 전통적인 제주가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제주시 원도심 산지천 인근에는 즐비한 현대식 건물 더미 속 안거리·밖거리 형태의 옛 제주 가옥 한 채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1949년 건축된 이 집은 제주의 전통적인 주택 형태를 띠면서도 일본의 건축 기술이 오묘하게 첨가된 근대 건축물로, 어느 한 고씨 일가가 살았던 집이라 ‘고씨 주택’이라 부른다. 고씨 주택은 수년 전 원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주민들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보존됐고, 이제는 어엿한 ‘주민 사랑방’이자 관광명소가 됐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는 2019년부터 ‘제주책방·사랑방’으로 운영 중인 고씨 주택이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됐다고 7일 밝혔다. 근대 주거 건축물이라는 점, 1940년대 건축 기술과 자재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점,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보존 노력으로 복원되고 지켜진 산물이라는 점등이 높게 평가됐다.

고씨 주택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안쪽에 안거리(안채), 올레길과 접하는 방향에 밖거리(바깥채)가 마주하는 제주의 전통적인 가옥 모습을 하고 있다. 예전 제주에서는 부모와 출가한 자녀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안거리와 밖거리에 각각 따로 살았다. 2채의 집에는 부엌과 창고 등이 다 갖춰져 있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이는 출가한 자녀와 부모가 한 공간에 살면서도 각자의 생활 방식을 영유하고, 독립된 경제생활을 인정하는 제주 특유의 문화에서 비롯된 주택 구조다.

반면 기와지붕, 창호의 형태, 기성 목재를 사용한 기둥 등에선 일본식 건축 양식이 엿보인다. 제주의 전통 양식에 일본의 색이 더해진 과도기적 건축물로, 적산가옥과는 또 다른 ‘한·일 절충’ 가옥인 셈이다.

하지만 고씨 주택은 2014년 원도심 일부를 재정비하는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 과정에서 철거될 뻔했다. 낙후한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이 일대 건물을 매입해 헐고 공원과 광장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철거 직전 주민과 시민단체가 제주도에 철거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 원도심 투어를 진행하면서 보존 운동을 했다.

당시 고씨 주택 보존에 앞장섰던 김형훈씨는 “가치 있는 건물은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원도심 재생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제주도는 고씨 주택과 바로 인접한 모텔인 녹수장, 금성장, 목욕탕 굴뚝, 유성식품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고씨 주택의 밖거리는 현재 제주책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조 과정을 거쳐 현재 고씨 주택의 안거리는 사랑방, 밖거리는 제주책방으로 운영 중이다. 사랑방은 밖거리에서 빌린 책을 읽거나 각종 주민 모임 등을 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된다. 고씨 주택 바로 옆 모텔은 산지천 갤러리로, 유성식품은 공유주방 등으로 재탄생했다.

제주책방과 사랑방 이용객은 매월 800~900명이며, 이 중 절반은 관광객이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도 많이 찾는 만큼 주변 관광자원을 연결한 코스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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