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을 넘어서 직장복귀 지원을 위한 체계로

한겨레 2023. 12. 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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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산재환자 모욕하는 대통령실 규탄 긴급 증언대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산재보험 재정 부실화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에서 나온 ‘산재 나이롱환자 급증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급식노동자인 정경희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구지부장이 참석자의 발언을 듣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읽기]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하여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 또는 그 협정.”

사전에서 설명하는 카르텔의 의미다. 이런 경제용어가 갑자기 “산재 카르텔”이라는 낯선 조어의 형태로 처음 나온 것은 10월 한 일간지의 보도에서였다. 기사는 ‘나이롱환자’에게 근로복지공단병원이 재활치료를 제공하면서 요양기간이 길어지고, 그 환자가 수억원의 산재보험급여를 수령했다는 자극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서 중증도가 낮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장기간 요양하며 수억원씩 급여를 탄 사례들이 소개되었고, 산재 판정이 잘 나오게 해준다는 노무법인과 병원의 연계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도 이어졌다. 산재 승인이 너무 쉬워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아마도 산재보험급여를 부당하게 타 가는 이득을 취하는 산재 노동자, 병원, 노무사 등을 묶어서 “카르텔”이라고 부른 것인가 싶다. 물론 이게 기득권의 독점을 위한 것인지, 누가 기득권자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기에 적절한 단어 선택인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한편 국회에서는 산재 승인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어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국가가 승인 전까지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업무관련성 판단을 위한 재해조사나 역학조사가 길어지면서 산재 승인 여부를 기다리다 숨지는 안타까운 사례가 소개됐다. 개인질환이라 하더라도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 제도나 사업주의 유급병가 제공 의무가 없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면, 산재 노동자들만이라도 일단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는 게 합당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재 은폐가 만연한 한국 현실을 고려해 인정기준을 완화하고 승인을 더욱 쉽게 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업무상 질병 신청이 급증하고 있으니 재해조사를 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인력 충원과 전문인력 양성이 중요하다는 제안도 있었다.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의 기능보다 재정적 문제를 우선시하는 태도는 문제다. 특히 일부 사례를 마치 전체의 경우인 양 호도하고 각 사례를 악마화하는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민간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병원과 노무법인들이 있고, 환자들의 일상생활이나 병원이나 노무법인의 행태를 긴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근로복지공단이 이러한 사례들을 모두 색출하여 발본색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어찌 보면 완전히 달라 보이는 양쪽의 문제제기가 공통되게 지향하는 바는 있다. 바로 아픈 노동자들이 있고, 이 노동자들이 조기에 치료받고 건강해질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책 지향에는 아마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산재보험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또 문제의 양상이나 보건의료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의 완성도에 차이가 크긴 하지만, 이미 선진국들은 유사한 문제제기 과정을 겪어왔다. 소위 “복지병”이 그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영국이나 스웨덴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200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노동자들의 직장 복귀 지원을 위한 지원체계로 상병수당 제도를 개편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일하는 방식 개혁”의 중요한 어젠다 중 하나가 일과 치료의 병행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아픈 노동자들이 질환이 심각해지기 전에 치료를 받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특히 정신질환으로 인한 상병수당이 증가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상 예후를 위해서도 일과 치료를 적절하게 병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질환이 심해지기 전에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와 병원, 사업장과 소통하며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업무 적응을 도울 수 있는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이나 정신질환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승인까지 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적절한 요양관리를 통해 치료 초기부터 직장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카르텔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전에 드러난 문제들을 모두 모아 심하게 아프기 전에 치료받을 수 있고 적절한 관리와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아픈 노동자는 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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