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최남단에서 멈춘 구호 물자…"우린 길고양이·개와 같은 처지"

김효진 기자 2023. 12. 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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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 남부 칸유니스까지 내려오며 구호품 전달 통로 막혀·피난 권고한 라파에도 폭격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인 칸유니스까지 지상전 범위를 넓히며 구호 물자 분배가 최남단 라파에서 멈춰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난민들이 거리에서 천 한 장을 깔고 생활 중인 과밀한 라파에 공습까지 이어졌다.

유엔(UN) 사무총장이 유엔 헌장에 명시된 권한을 발동해 안보리에 인도주의적 휴전을 선언할 것을 촉구했지만 상임이사국 미국이 거부권을 쥔 상황에서 기대는 크지 않다.

6일(이하 현지시각)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까지 4일째 가자지구에서 유일하게 라파에서만 구호품 배급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OCHA는 라파와 인접한 칸유니스는 "적대 행위 강도" 탓에, 중부 지역도 "이스라엘군이 주요 도로 이동을 제한함에 따라" 구호품 분배가 거의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구호 물자는 이집트와 맞닿아 있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서만 반입되는데 이 물자들이 앞서 이스라엘이 지상 작전을 시작하며 포위한 가자지구 북부는 물론 최근 지상전이 확장된 남부 칸유니스, 중부 데이르 알발라까지도 도달하지 못하고 최남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5일 성명에서 당초 미미한 수준이었던 인도주의적 지원이 "이제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입되는 구호 물품이 양도 임시 휴전 기간에 비해 크게 줄었다. OCHA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1일 오전까지 7일간 지속된 휴전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70대의 구호 트럭과 11만리터의 연료가 가자지구에 공급된 반면 6일엔 그 절반 정도인 구호 트럭 80대와 연료 6만9000리터가 반입됐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엔 지난달 7일 분쟁 발발 전엔 하루 500대의 구호 트럭이 진입했다.

칸유니스 전투는 격화 중이다. 미 CNN 방송을 보면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6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군이 칸유니스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이 지역 중심부에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의 집을 포위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신와르가 "도망칠 수 있지만 찾아내는 건 시간 문제"라고 강조했다. 신와르는 칸유니스 출신이지만 그가 현재 어디에 머무는지는 불분명하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를 포함해 하마스 최고 지도자들이 칸유니스에 은신하고 있다고 보고 칸유니스에서 지상전을 펼치고 있다.

칸유니스 주민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칸유니스에서 보도하는 BBC의 아드난 엘부르쉬 기자는 이 지역 나세르 병원에 들것에 실린 청년, 4~5살 먹은 어린아이 등 환자들이 끊임 없이 실려 왔고 또 다른 병원인 유럽 병원 부지와 복도엔 수천 명의 피난민이 몰려 있다고 보도했다.

피난 생활 중인 한 어린이들은 "폭격 소리가 들리면 벽 근처 천막으로 뛰어 들어간다"며 "무섭다. 우리들 위에서 창문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피신 중인 한 여성은 안전한 구역으로 안내 받은 칸유니스 동부 알파카리 지역이 폭격을 당하고 있다며 상황이 "매우 나쁘다. 우리에게 안전한 지역도, 거주 가능한 지역도 없다"고 말했다.

엘부르쉬 기자는 칸유니스 거리에서 만난 주민 사마 일완이 빈 물병 두 개를 흔들며 자신의 여섯 자녀가 목마름에 지쳐가고 있고 "우리는 (길에 사는) 고양이나 개와 마찬가지가 됐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북부 출신인 기자 자신도 이스라엘의 칸유니스 포위 뒤 이동이 위험해진 탓에 중부로 피난한 다른 가족들을 만날 수 없는 처지다.

이스라엘이 피난을 권한 라파는 이미 과밀한 상태다. OCHA는 지난 3일 이후 수만 명의 피난민이 라파에 도착했고 그중 대부분이 칸유니스에서 옮겨 왔다고 설명했다. OCHA는 "라파 내 대피소의 수용 여력이 없어 대부분의 새로 도착한 난민들은 거리나 도시 전역의 빈 공간, 공공 건물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라파로 피난한 언론인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하나 아와드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의식주 관련 모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지난 이틀 동안 유입된 피난민들은 거리에 나일론 천을 깔고 머물렀다. 일부는 차에서, 일부는 길거리에 있었다. 비까지 내렸다. 삶이 너무 가혹하다"고 토로했다.

공습까지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6일 이스라엘군이 라파에 4시간 가량 인도주의적 교전 중지 발표 뒤 이 조치가 종료되자마자 공습을 가해 이 지역 샤부라 난민촌의 주거용 빌딩이 폭격 당했다고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이로 인해 24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많은 여성과 어린이가 죽었다고 매체에 증언했다.

인근 쿠웨이트병원에 있던 언론인 아들리 아부 타하는 매체에 "많은 부상자가 위급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이스라엘군이 관련해 정확한 좌표 제시 없이는 공습에 대해 말할 수 없고 "확인 중"이라고만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안전 구역으로 제시한 가자지구 남서부 알마와시 지역은 몰려드는 피난민 외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피난민들이 알마와시에서 쉼터도, 인도주의적 지원도, 어떤 기반 시설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칸유니스에서 알마와시로 피난한 피난민을 돕는 인도주의 단체 노르웨이난민협의회(NRC) 직원 유세프 함마쉬는 매체에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 황량한 야외 공간 외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난민들이 목재와 플라스틱을 모아 임시 대피소를 짓고 있다며 "이는 어떤 보호도 제공해주지 않지만 안전하다는 느낌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1만 6000명 이상이 숨지고 유엔 직원들도 130명 이상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6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해 관련해 법적 구속력 있는 결의안을 의결할 수 있는 안보리에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유엔 헌장 99조는 "사무총장은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안보리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서한에서 안보리에 "인도주의적 휴전 선언"을 촉구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99조 발동이 "헌장이 사무총장에게 부여하는 유일한 권한"이며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다만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휴전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사무총장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안보리가 휴전 결의안 채택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케네스 로스 미 프린스턴대 공공·국제정책대학원 방문 교수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가자지구 휴전 요구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대한 끊임없는 폭격이 '하마스를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밝혀지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죽어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알나자르 병원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아이의 주검을 안고 울부짖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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