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제출 명령' 무시한 애플에 철퇴 가한 韓 법원

이현승 기자 2023. 12. 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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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고의 성능 저하’ 소송 2심서 소비자 일부 승소
法 “현저한 정보 불균형·비대칭성 존재”
애플, 법원 문서제출 명령 무대응
법조계 “판결로 철퇴 가한 것” 해석
애플과 소비자들 사이에 현저한 정보 불균형 내지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있다.
6일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민사 12-3부 판결선고 자료 中

애플이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리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한 것과 관련해 소비자에게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6일 나왔다. 판단 배경으로 ‘정보 불균형’이 언급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한국 법원이 문서제출 명령을 무시한 애플에 판결로서 철퇴를 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폰 15 시리즈 국내 정식 출시일인 13일 서울 애플스토어 명동점에서 예약구매 고객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 뉴스1

서울고법 민사12-3부(부장판사 박형준·윤종구·권순형)는 이모씨 등 아이폰 사용자 7명이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고심에서 “정신적 손해 배상으로 1인당 7만원씩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원고 패소 판결을 했던 1심을 뒤집은 것이다.

1심과 2심 사이 새로운 사실관계나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두 재판부는 애플이 소비자기본법상 고지의무, 설명의무를 위반했는 지를 두고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1심은 기업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관련해 제품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현상을 모두 예측해 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아이폰의 경우 업데이트로 성능이 저하되더라도 그 목적이 전원 꺼짐을 막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애플이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업데이트 결과나 영향에 대해서 소비자들이 애플 만큼 알 수 없는 현저한 정보 불균형, 비대칭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업데이트를 배포한 게 전원 꺼짐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해도 그 결과로 성능이 일부 제한되는 만큼 애플이 소비자들에게 업데이트를 설치할 지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고지해야 했다고도 했다.

법조계는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문에는 없었던 ‘정보의 불균형’을 판시한 것에 주목했다. 이를 두고 재판 과정에서 애플이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에 무대응했던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판 과정에서 법원은 원고 측 요청에 따라 애플에 ‘iOS 업데이트가 적용된 아이폰의 성능·기능에 대해 실험, 연구, 분석 등을 계획하거나 이를 실행한 경우 그 과정이나 결과가 기재된 문서 일체’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애플은 관련 문서가 있는지 여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원고 소송 대리인 측은 재판 내내 문제를 제기했으나 애플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미국은 이런 경우 판사가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측에 불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 제도)가 있어서다. 이 제도는 미국 재판부가 2020년 2월 LG화학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당한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판결을 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우리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 대신 우리 민사소송법에선 법원이 문서제출을 명령했는데 따르지 않았을 경우, 문서제출을 신청한 측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애플이 법원이 명령한 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아이폰 이용자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재판 진행 중에는 애플의 문서제출 명령 거절에 대한 패널티를 부과하지 않았으나, 원고 측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서 일종의 철퇴를 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1심에서 애플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면 2심에서 원고 측 주장을 상당수 인용한 것이 눈에 띈다”며 “이용자가 경험했을 정보 불균형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애플의 폐쇄적인 문서 제출 경향이 반영됐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애플은 향후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에선 소송인원이 1심 6만여명에서 2심 7명으로 급감했는데도 조정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손배해상 책임이 없다는 기존 주장을 끝까지 입증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상고를 거쳐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소송인들은 1인당 7만원, 총 49만원을 배상 받는다. 항소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아이폰 이용자는 소송을 따로 제기해야 한다. 1심 패소 이후 2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이용자들은 빠진 사람은 재심 절차를 밟아야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법원은 매우 제한된 사유에 대해서만 재심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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