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처럼 물그릇 키워 홍수 막겠다…윤 정부, 댐 건설 박차
전문가들 “좁은 지역 폭우 집중돼 피해
대규모 구조물 대응 어려워…90년대식”
환경부가 기후변화로 일상화된 극한 홍수에 대응하겠다며 댐 건설과 준설을 포함한 지류·지천 정비를 중심으로 치수 패러다임(체계)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비사업이 적기에 시작될 수 있도록 경우에 따라 환경영향평가까지 생략하기로 해 환경 훼손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 사이에선 “기후변화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결론난 과거 치수 패러다임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환경부는 7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치수 패러다임 전환 대책’을 보고했다. 환경부는 이 자리에서 극한홍수 대응을 위해 신규 댐 건설을 통한 ‘물그릇’ 확대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책은 지난 여름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대규모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뒤 정부·여당에서 기존 치수대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 나온 것이다.
환경부는 우선 극한홍수 대응을 위해 신규 댐 건설을 통한 물그릇 확대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미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지역에서 건의한 10개 댐의 기본구상 및 타당성조사 사업비까지 편성해 뒀다. 환경부는 내년 초 ‘하천 유역 수자원 관리계획'에 댐 신설 후보지와 리모델링 대상 댐을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진 환경부장관은 지난 5일 사전 브리핑에서 “극한 홍수에 대비해 국가 주도 및 지역 건의의 투트랙으로 물그릇을 확대하겠다”며 “지역에서 건의한 댐 뿐만 아니라 환경부가 직접 지역의 홍수와 물 부족 상황을 검토해 필요한 지역에 적정 규모의 댐을 신설하고, 적지가 있다면 대형 댐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신규 댐 건설에 나서기로 한 건, 전임 정부 때 세운 댐 정책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2018년 9월 당시 환경부는 “댐 정책의 패러다임을 건설에서 관리로 전환한다”며 당시 댐건설장기계획에 포함돼 있던 낙동강 임천댐(저수량 1억7천만t) 등 6개 국가 주도 댐 건설 추진을 중단한 바 있다.
환경부 주도로 신규 댐 건설에 나선다면 중단된 이들 댐이 우선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과거에 검토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와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유역 상황을 보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자원 전문가들은 대규모 댐 건설은 장기간 계획이 필요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아 3년여 남은 현 정부 임기 중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는 또 지금까지 하천정비가 소극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며, 제방의 신·보축을 위주로 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퇴적토 준설까지 함께하는 지류·지천 정비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준설은 올 여름 중부지방 수해 뒤 윤석열 대통령이 “치수의 제1번”이라며 특히 강조한 것으로 전해져 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국가하천 19곳에서 192만㎥의 퇴적물을 준설하는 것을 포함해 하천정비사업비를 올해(4510억원)보다 47%(2117억원)나 확대 편성한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유입되는 국가하천의 수위가 상승했을 때 배수가 잘 되지 않은 전국의 지방하천 구간 400여곳을 ‘배수영향구간’으로 지정해 직접 정비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38곳을 우선 정비하기 위한 사업비도 이미 내년 예산에 편성돼 있다.
하천정비가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환경영향평가도 간소화된다. 환경부는 하천기본계획 수립 단계에서 환경영향평가 항목이 검토된 하천정비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도 고쳐 하천기본계획을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약식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으로 바꾸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초안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과 본안 협의 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법에 약식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하게 되면 평가 항목·범위·방법 등도 간략하게 할 수 있게 돼 있어 생태적으로 특히 중요한 하천의 환경영향에 대한 평가가 형해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0년 단위로 이뤄지는 하천기본계획 수립과 개별 하천정비사업 착수 시점 사이에는 시간 차가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에 하천 환경도 변화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영향평가 생략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환경부가 발표한 이런 홍수방어 대책을 두고 기후변화 및 하천·수자원 분야 전문가 사이엔 “과거 치수정책으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나왔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기후변화 시대에는 좁은 지역에 폭우가 집중돼 피해가 나는 형태여서 (댐 건설 등) 대규모 구조물 중심의 홍수 방어로는 대응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며 “이에 따라 이미 오래 전 세계적으로 ‘홍수를 위한 공간’을 내주고 선택적으로 방어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치수 패러다임이 전환됐는데, 환경부의 계획은 거의 1990년대 치수 패러다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도 “최근 집중호우 때 인명피해는 대개 산사태나 하천급류에 휩쓸려서 발생해 댐이나 준설로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닌데, 댐과 준설을 중심에 두는 것은 치수 정책의 후퇴”라고 말했다. 염 대표는 “효과와 타당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댐 건설과 준설을 밀어부치려는 모습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닮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치수 대책은 2022년 환경부로 ‘물관리일원화’가 된 이후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박창근 대한하천학회장(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은 “국토교통부의 하천 관리 업무를 환경부에 넘겨 물관리일원화를 한 것은 환경부가 ‘환경까지 생각해 잘 할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었기 때문인데, 환경부의 오늘 발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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