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퇴직금 잔치’ 정부 압박에 ‘희망퇴직’ 고민 빠진 은행 노사
‘퇴직금 잔치’ 압박에 희망퇴직 조건 고심
희망퇴직 실시하더라도 신청자 적을 전망
은행권이 내년 초 실시할 예정인 ‘희망퇴직’을 둘러싸고 고민에 빠졌다. ‘이자장사를 통해 번 돈으로 퇴직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정부의 지적에 희망퇴직 조건을 예년처럼 맞추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조를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조건이 좋지 않으면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직원이 감소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의 눈총을 받아 가며 희망퇴직의 조건을 낮췄음에도 희망퇴직 본연의 목적인 경영·인력 구조의 효율화를 달성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에서는 정례화된 연초 희망퇴직을 아예 실시하지 않는 방안도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7일 은행권에 따르면 내년 초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은행들은 희망퇴직 규모와 보상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달 말 희망퇴직 조건에 대해 노사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은행도 12월 중 희망퇴직에 관한 세부조건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 노사의 희망퇴직에 관한 협의는 예년과 달리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은 그동안 높은 희망퇴직금을 주며 인력을 정리해 왔지만 올해는 외부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은행이 금리 인상기 늘어난 이자수익을 바탕으로 퇴직금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퇴직금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 속 은행은 이전만큼 좋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한 은행의 희망퇴직 담당 임원은 “원래도 노사협의를 통해 희망퇴직의 조건을 맞추기가 어려웠지만, 올해는 특히 협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귀띔했다.
각 은행이 공개한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인당 희망퇴직금 지급액 평균은 지난해 3억5548만원이다. 1인당 희망퇴직금은 하나은행(4억794만원), KB국민은행(3억7600만원), 우리은행(3억7236만원), NH농협(3억2712만원), 신한은행(2억9396만원) 순이다. 일부 은행의 관리자급 직원이 퇴직한 경우에는 퇴직금이 10억원이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은행권은 노조와 퇴직 조건을 맞춰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신청자가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영업점 축소 등에 따라 희망퇴직을 통해 인력 구조를 효율화하려던 은행의 의도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경영 전략에 따라 희망퇴직 규모 등을 정하는데 전년보다 조건이 좋지 않으면 퇴직을 하는 대신 버티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며 “은행은 고연차 직원에 대한 희망퇴직을 통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등 인력 순환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조건을 축소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NH농협은행은 전년보다 신청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20개월 치 위로금 지급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현재 심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NH농협은행의 희망퇴직 조건은 만 56세 이상 직원에게 28개월 치, 10년 이상 근속한 만 40세 이상 일반 직원에게 20~39개월 치 특별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최종적으로 400명대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지만, 올해 신청자 숫자가 300명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퇴직 심사를 통해 신청자를 걸러내면 실제로 퇴직하는 직원 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단, NH농협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 조건이 축소된 것에 대해 “지난해만 특별히 희망퇴직 조건이 좋았던 것으로, 이번 희망퇴직 조건은 그 이전과는 동일하다”라고 해명했다.
노조 입장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에 대한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사측에서 예년보다 후퇴한 희망퇴직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은행 노조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회사와 직원의 필요가 맞아떨어졌을 때 성사되는 것인데, 사측이 예년보다 좋지 않은 조건을 제시하면 직원들이 이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을 먼저 보고 이에 대한 수정을 요청할 예정으로, 예년보다 희망퇴직 시기가 뒤로 밀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더라도 조건이 맞지 않을 수 있어 몇몇 은행에서는 아예 희망퇴직을 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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