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재앙’ 이례적으로 안보리 소환한 유엔 사무총장

김서영 기자 2023. 12. 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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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례적으로 유엔 헌장에 보장된 자신의 권한을 동원해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을 촉구했다. 가자지구 남·북부에서 지상전이 벌어지며 ‘인도주의적 재앙’에 처하자 수십년 동안 쓰이지 않았던 조항까지 발동한 것이다.

6일(현지시간) 유엔에 따르면, 이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방금 내 임기 중 처음으로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적 시스템이 심각하게 무너질 위험에 직면해, 안보리에 인도주의적 재앙을 피하고 휴전을 호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엔 헌장 99조는 ‘사무총장은 국제평화와 안보의 유지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안보리에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발동된 사례가 드물며, 구테흐스 총장 역시 2017년 취임 이래 처음으로 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구테흐스 총장은 안보리에 보낸 서한에서 전쟁이 돌이킬 수 없는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번지고 있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피해야 한다”고 휴전을 촉구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구테흐스 총장이 취임 이후 99조를 발동할 필요를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안보리와 국제사회 전체에 휴전을 압박하길 바라는 취지에서 “극적인 선택을 했다. 이는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99조가 마지막으로 소환된 건 1989년이다. 하비에르 페레르 데 케야르 당시 사무총장이 레바논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해 발동했다.

99조를 발동했다 하더라도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이 조항을 발동한 건 그만큼 유엔 차원에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제위기그룹(ICG) 다니엘 포티 연구원은 “1989년 이후 쓰인 적 없던 이 권한이 발동됐다는 사실은 유엔에서 외교적·상징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알자지라에 전했다. 그는 “안보리 이사국들의 정치적 계산을 근본적으로 바꾸진 못하지만, 현 단계에서 외교적 관심을 높이고 상황의 긴급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무총장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안보리 이사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서한에 따라 즉각적인 인도적 휴전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UAE 유엔 대표부는 “우리의 초안은 아랍 단체와 이슬람 협력 기구의 지지를 받고 있다. 모든 국가가 사무총장의 요청을 지지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도 EU 회원국과 다른 안보리 회원국에 구테흐스 총장의 요구를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이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즉각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보리가 휴전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이들의 동맹국에 휴전을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제재, 국제연합군 등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안보리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둘러싸고 분열됐다. 특히 거부권을 보유한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 간의 의견이 일치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앞서 전투 중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러시아와 영국은 기권했다.

이스라엘은 강하게 반발했다.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거의 사용되지도 않는 조항을 발동해 ‘도덕적 바닥’을 찍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을 압박할 때만 이 조항을 발동하기로 했다. 그가 도덕적으로 왜곡됐고 이스라엘에 편견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구테흐스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유엔을 향한 이스라엘의 적대적인 태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앞서 구테흐스 총장이 “하마스의 공격은 진공상태에서 발생한게 아니다”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한 역사적 배경을 언급하자,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 등은 “유엔 수장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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