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와인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불멸의 와인 ‘타임리스’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3. 12. 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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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던컨 1972년 미국 첫 컬트와인 선보인 선구자/2015년 85세 생일 앞두고 작고/아들 데이비드 생일때 부르려 만든 노래 타임리스로 헌정 와인 타임리스 만들어
실버오크 와인. 최현태 기자
“The western sky you went to find/To open space where the river winds/The mountains high, sunny days/Generation of love here to stay/Like fine wine/Like kindness/That’s what you are...Timesless ♩♬∼”

아버지. 듣기만 해도 이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휴일도 잊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손을 놓지 않던 아버지의 갈라진 손등과 주름진 이마. 볼때마다, 떠올릴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한쪽 가슴이 저며 옵니다. 

아들은 2015년 아버지의 85세 생일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노래를 만들어 생일때 축하노래로 불러보려 합니다. 좋은 와인처럼 시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 곁에 늘 머무는 존재는 바로 당신, 아버지라며.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네요. 아버지는 노래를 듣지 못하고 생일 몇주전 아들 곁을 떠납니다. 노래는 그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이 되고 말았네요. 떠나간 아버지가 못내 서러워 아들은 아버지에 헌정하는 와인을 만듭니다. 미국 컬트와인 대명사 실버오크(Silver Oak)가 만든 역작 타임리스(Timeless). 불멸의 와인이 탄생한 미국 나파밸리 소다 캐넌 랜치로 떠납니다.  
노스코스트 와인산지.
나파밸리 와인산지.
실버오크 타임리스. 최현태 기자
레이먼드 던컨(오른쪽)과 저스틴 메이어.
◆나파밸리 첫 컬트 와인 실버오크의 탄생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알렉산더 밸리(Alexander Valley)는 소노마(Sonoma) 카운티의 대표 산지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하더라도 별도의 독립된 AVA(American Vitcultural Areas)는 아니었습니다. 공식 AVA가 된 것은 1984년입니다. 그 이전에는 나파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를 구분하지 않고 노스 코스트(North Coast)라고 뭉뚱그려 불렀답니다. 그런 알렉산더 밸리의 잠재성을 알아본 이가 ‘나파밸리 컬트와인 아버지’ 레이먼드 던컨(Raymond Duncan)입니다. 콜로라도주 석유재벌이던 레이는 알렉산더 밸리의 로스 아미고스 빈야드(Los Amigos Vineyard) 100에이커를 구입해 크리스천 브라더(Christian Brothers)의 와인 메이커 저스틴 메이어(Justin Meyer)와 1972년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실버오크 와이너리 전경.
실버오크 포도밭 전경.
원래 와인 이름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던컨-메이어’였습니다. 하지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이름이라 여겨 1975년 실버오크로 이름을 바꿉니다. 와이너리가 나파밸리 오크빌(Oakville)과 실버라도 트래일(Silverado Trail) 중간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런 이름을 지은 겁니다. 실버오크 첫 빈티지는 병당 6달러에 출시됐는데 당시 나파밸리 와인이 3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두배나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1980년대들어 로버트 파커 등 비평가들의 호평이 이어졌고 캘리포니아 페어 와인 컴피티션(California State Fair Wine Competition)에서 금메달을 따냅니다. 로스 앤젤레스 타임(Los Angeles Times)지 와인 편집자 로버트 발자르(Robert Balzar)는 실버오크 1974년 빈티지를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합니다.
1970년대 실버오크 새 빈티지를 구입하려는 대기 줄.
실버오크 나파밸리 1979.
 
실버오크의 명성에 힘입어 1985년 알렉산더 밸리 AVA가 설립됐고 실버오크는 알렉산더 밸리를 와인에 처음으로 표기한 와이너리가 됐습니다. 이처럼 와인이 유명해지자 1990년부터는 새 빈티지를 구입하기 위해 출시일 와이너리 앞에 긴 줄이 늘어섰고 일부는 앞줄에 서려고 밤새 야영까지 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대기 줄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몇년을 기다려야 겨우 소량을 받을 수 있는 미국 최초 컬트 와인은 이렇게 시작됐답니다.  
소다 캐넌 랜치 위치.
소다 캐넌 랜치 전경.
 
◆소다 캐넌 랜치와 타임리스 탄생
나파밸리 남동쪽,  바카 산맥(Vaca Mountains) 남부에 있는 소다 캐넌 랜치(Soda Canyon Ranch)는 오크빌과 함께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스택스립  디스트릭트(Stags Leap District)와 오크 놀 디스트릭트(Oak Knoll District)에 인접해 있습니다. 6개 미세 기후가 하나의 포도밭에 집중된 매우 독특한 곳입니다. 6개 포도밭은 더 피크(The Peak), 더 이브닝 슬로프(The Evening Slopes), 록키 블록(Rocky Blocks), 트랜지션 존(Transition Zone), 리틀 포므롤(Little Pomerol), 하드팬 앨리(Hardpan Alley)로 구성됐습니다. 대체로 화산토양입니다. 이중 리틀 포므롤은 보르도 우안 포므롤과 비슷한 클레이 토양으로 우아한 포도가 생산돼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버오크는 1999년 이곳 포도밭 113에이커를 매입해 실버오크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을(Silver Oak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을 만드는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다 캐넌 랜치 6개 미세기후 포도밭.
타임리스. 최현태 기자
 
이런 소다 캐넌 랜치 포도밭에서 탄생한 와인이 실버오크 최상급 와인 타임리스랍니다. 유니크한 싱글빈야드에서 생산된 타임리스는 복합미가 매우 뛰어나고 우아한 향을 선사합니다. 골격이 잘 잡혀 구조감도 뛰어납니다. 향긋한 체리와 석류향이 비강을 적시더니 시간이 지나면 감초, 민트의 허브향과 우아한 장미꽃향이 어우러지며 겹겹이 쌓인 아로마가 하나둘씩 풀어 헤쳐집니다. 뛰어난 산도와 매끄러운 질감의 탄닌이 매력적이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볼륨감과 와인 이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니시도 돋보입니다.  한해에 2400병만 생산되니 정말 소량이네요. 블렌딩 비율과 품종을 절대 밝히지 않아 베일에 휩싸여 있는데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품종으로 여러 품종을 섞는데 메를로가 보다 조금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블렌딩 비율은 매년 바뀌며 16개월동안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합니다.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던컨.
타임리스 와인병에 적힌 노래 가사. 최현태 기자
한국을 처음 찾은 레이의 아들 데이비드 던컨(David R. Ducan)은 타임리스 탄생과 관련된 일화를 들려줍니다. “2015년 레이의 85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뭔가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죠. 고민 끝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포도밭에서 헌신한 아버지를 기리는 노래 타임리스를 직접 작사 작곡했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생일 몇주전 하늘나라로 떠나셨어요. 노래를 들려주지 못해 너무 아쉽네요. 나중에 레이를 기리는 와인을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와인 이름을 뭘로할까 고민하다 아버지께 드리려한 노래 타임리스로 정하게 됐답니다.” 자신이 직접 불러 녹음한 타임리스를 들려주는 데이비드의 눈가는 그만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타임리스 와인병 백레이블에는 노래 가사가 적혀있습니다. “당신 찾은 서쪽 하늘/강물이 굽이치는 열린 공간으로/산은 높고 화창한 날들/사랑의 세대가 여기 머무네/좋은 와인처럼, 친절함처럼/그것은 바로 영원한 당신이에요♩♬∼”
레이 던컨(가운데)과 두 아들 데이비드(오른쪽 두번때), 팀(오른쪽).
타임리스 탄생과정을 설명하는 데이비드 던컨. 최현태 기자
 데이비드 던컨(오른쪽)과 팀 던컨.
데이비드가 와이너리에 뛰어든 것은 2002년으로 어느덧 20년이 넘었네요. “나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기에 완벽한 사람을 드디어 알아냈어!.” 2002년 어느날 레이는 데이비드에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게 누군가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답합니다. “바로 너야!”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데이비드는 35년의 덴버 생활을 정리하고 나파밸리로 이사합니다.  아내 캐리(Kary)가 덴버대학교의 부학장이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데이비드는 돌아봅니다.  현재 실버오크는 데이비드 던컨이 대표이사, 동생 팀 던컨(Tim Duncan)이 부사장인 가족 경영 와이너리입니다. 타임리스는 3병을 한 묶음으로 판매하며  실버오크 와인들은 하이트진로가 수입합니다.
실버오크 알렉산더밸리 카베르네소비뇽. 최현태 기자
◆알렉산더밸리 vs 나파밸리
실버오크는 알렉산더밸리와 나파밸리 두곳에서만 카베르네소비뇽을 생산합니다. 두 와인은 스타일이 비슷한 듯, 좀 다릅니다. 둘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품종으로 만드는데 알렉산더밸리가 카베르네소비뇽 비율이 좀 더 높습니다. 또 둘다 미국산 오크통만 사용하는데 알렉산더밸리는 새오크 50%, 나파밸리는 새오크 100%로 양조합니다. 알렉산더 밸리는 2개월 오크숙성뒤 18개월 병숙성, 나파밸리는 24개월 오크숙성 뒤 20개월 병숙성을 거칩니다. 
실버오크 나파밸리 카베르네소비뇽. 최현태 기자
알렉산더 밸리 2018은 카베르네소비뇽 94.8%, 메를로 4.2%, 카베르네프랑 1%입니다. 나파밸리 2018은 카베르네소비뇽 76%, 메를로 15.2% 카베르네프랑 5.1%, 쁘띠베르도 3.2%, 말벡 0.5%입니다. 나파밸리는 메를로가 더 많이 들어가고 알렉산더 밸리보다 좀 더 부드러워 접근성이 좋습니다. 첫 빈티지는 알렉산더 밸리가 1972년, 나파밸리가 1979년입니다.  2018년은 기후가 아주 뛰어나 질적으로 양적으로 최고의 해로 기록됐답니다. 이에 2018 빈티지는 이미 솔드아웃됐고 2019 빈티지가 한국에 조만간 들어올 예정입니다. 나파밸리는 블루베리로 시작해 허브향이 더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커피, 코코아, 초콜릿 어우러지는 복합미를 발산합니다.
데비드 던컨. 최현태 기자
◆미국산 오크만 고집하는 실버오크
보통 프리미엄 와인 생산자들은 가격이 3배 정도 비싸지만 미국산보다 프렌치 오크를 더 선호합니다. 나무의 밀도가 미국산 오크보다 훨씬 촘촘하기 때문입니다. 산소가 보다 미세하게 드나들면서 좀 더 우아하고 자연스런 오크향이 와인에 깃듭니다. 하지만 실버오크 카베르네소비뇽 와인들은 가격대가 매우 높은 컬트 와인임에도 모두 미국산 오크만 고집합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미국적인 와인의 맛과 향은 미국 오크로만 구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오크통 제작회사를 직접 소유하고 있어 최고의 미국산 오크를 사용하다는 자신감도 한 몫합니다. 실버오크는 2000년부터 투자한 오크통 제작회사 A&K 쿠퍼리지(Cooperage)에서 2009년부터 실버오크 전용 오크통을 제작했고 2015년엔 아예 이 회사 지분을 모두 인수했습니다. 미주리(Missouri)산 미국 오크통 제작회사를 보유한 미국 내 첫 와이너리가 된 겁니다.
A&K 쿠퍼리지.
데이비드 던컨. 최현태 기자
또 최상의 코르크 품질을 위해 보조 와인 메이커 크리스틴 슐쓰너(Christine Schleussner)는 미국 코르크 공급자협회(Cork Supply USA)와 공동으로 연구해 ‘드라이 공법(Dry Soak)’으로 코르크를 검사,  코르크가 상해서 와인 맛이 변하는 코르키(Corky) 확률을 산업 평균 4%에서 0.53%로 획기적으로 낮췄습니다. 실버오크는 새 오크통 교체, 온도조절 발효조 도입, 포도 완숙도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한 포도알 분석 최첨단 기기 등 다양한 설비투자로 수확과 양조과정에도 혁신을 불렀습니다. 그 결과 풍부한 과일 아로마와 정제되고 세련된 타닌을 지닌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투미 소비뇽블랑. 최현태 기자
◆할머니를 기리는 와인 투미
데이비드 던컨은 할머니를 기리는 와인도 만듭니다. 바로 할머니 이름을 딴 투미(Tomey) 소비뇽블랑과 피노누아입니다. 소비뇽블랑은 나파 카운티와 소노마 카운티 두 곳의 포도로 만드는데 모두 직접 재배한 포도만 사용합니다. 크리스피한 산도는 너무 찌르지 않아 적당하고 봄비 같은 생기발랄한 풀향으로 시작돼 레몬 제스트, 복숭아 꽃향 등 핵과일향이 피어나고 약간의 허브 뉘앙스도 더해집니다. 오크 터치가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버터리하지 않게 과일향을 잘 살렸습니다. 나파 카운티와 소노마 카운티 포도를 절반가량 섞는데 매년 바뀌는 비율을 병에 적어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합니다. 두 지역은 기후가 달라 비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소노마 지역이 훨씬 서늘한 기후여서 나파 카운티보다 3주 늦게 수확하며 산도를 잘 받쳐줍니다.
투미 러시안리버밸리 피노누아. 최현태 기자
투미 피노누아는 오레곤 던딘힐에서 산타바바라까지 11개 빈야드 지역에서 11종을 만듭니다. 11개중 소노마코스트 러시안리버밸리(ussian River Valley) 피노누아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해안과 가까운 서늘한 지역으로 11개 지역중 과일향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이 느껴질 정도로 붉은 과일향이 풍성하면서도 산도가 뒤에서 중심을 잘 잡아줍니다. 실버오크와 다르게 프렌치 오크만 사용하며 새오크는 비중은 20%만 사용해 오크향을 잘 다스렸습니다.  농익은 과일향으로 시작해 시나몬 등 스위트한 스파이시가 피어나고 다크 캐러멜에 이어 흙냄새 등 복합적인 아로마가 어우러집니다.  골격은 탄탄하면서 질감은 매우 부드럽고 인상적인 피니시가 길게 이어집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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