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죄 첫 공판 박정훈 대령 "항명 성립 안돼…수사 외압 철저 규명해야"
지난 7월 폭우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다가 사망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과 관련,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항명죄 등으로 군사법원에 기소된 가운데 7일 첫 공판이 열렸다. 채 상병 소속 부대 최고 책임자인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군사법원에 사건의 책임이 부하들에게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진술서를 제출했다.
군 검찰에 의해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군사법원에 기소된 박 전 단장은 이날 오전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해병대 사관 81회 동기회 김태성 회장을 비롯한 해병대원들과 김정민 변호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과 함께 군사법원으로 향했다.
그는 공판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고(故) 채 상병이 순직한 지 141일째 되는 날"이라며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경찰의 수사는 요원하고 수사 외압을 규명하는 공수처의 수사 역시 더디기만 하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박 전 단장은 "저는 국방부 검찰단의 무도한 수사와 기소로 인해 군사재판을 받게 되었다"라며 "재판에 성실히 임해서 저의 무고를 밝히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규명토록 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전 단장은 항명죄와 상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전혀 성립될 수 없다"며 "재판부에서 이 사건의 본질에 좀 더 집중을 해서 수사의 외압에 대해 철저히 규명된다면 당연히 나머지 죄의 혐의도 다 밝혀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사건의 시작은 채 상병의 사망으로부터 비롯됐다. 사망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과 항명 사건, 수사 외압 사건 모두 유기적으로 연계 돼있다"라며 "특정한 항명 사건만을 떼놓고 재판을 하고 결론을 낸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전 단장은 "공수처의 수사와 경찰의 조사 이후에 민간 검찰의 수사 등등이 다 유기적으로 종합돼야 되기 때문에 복합적으로 다 밝혀져야 될 부분"이라며 "다만 제가 군사재판에 임하면서 이러한 내용들이 재판부에서 충분히 고려되고 감안해서 재판이 공정하게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전 단장은 지난 7월 19일 발생한 채 상병 사망사고의 초동수사를 맡았고 이후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1사단장을 포함,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관할 경찰청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 보고에 본인이 서명하면서 내용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7월 31일 국방부에서 돌연 해병대에 이첩 중지를 요구했고 이날 계획됐던 언론 브리핑도 취소됐다. 이후 다음날인 8월 1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 전 단장 간 통화에서 박 단장은 유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수사 대상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이를 외압으로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방부의 요구와 법 집행 사이에서 해병대 사령부가 망설이는 가운데, 해병대 수사단은 8월 2일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이에 국방부는 해당 이첩 자료를 거둬들이며 박 전 단장을 보직해임했고, 군 검찰은 그를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단장 측은 윤석열 대통령이 혐의자를 축소하라고 요구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전 단장이 언론 브리핑이 취소된 7월 31일 혐의 내용을 삭제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VIP(윤석열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당시 채 상병 소속부대의 최고 책임자이자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연수를 떠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군사법원에 채 상병 사건과 관련 "수중 수색을 하지 말라는 자신의 지시를 현장 지휘관들이 잘못 알아들어 생긴 일"이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했다고 <한겨레>가 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180쪽 분량의 진술서를 제출한 임 전 사단장은 채 상병이 소속됐던 해병대 포병대대장들을 책임자로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 전날 '신속기동부대장(7여단장)에서 포병11대대장으로 지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본인의 최초 지시가 변질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 전 단장의 변호인 김정민 변호사는 "(진술) 내용들이 결국은 대대장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그런데 당시 현장 지휘관들하고는 많이 진술이 엇갈린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본인이 포병을 닦달한 적이 없다는 진술은 현장 지휘관들의 진술과 명백히 배치되는 것"이라며 진술서를 검토한 뒤 자세히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임 전 1사단장이 책임을 돌린 제7포병대대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경호 변호사는 진술서에 대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장군으로서, 그것도 해병대 사단장으로서 육군 50사단장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기 부하에게 책임을 명시적으로 돌리는 발언은 이미 사단장의 지위는 잊었고, 한 인간으로서 '살려달라'는 절규로 들려 매우 심란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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