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내리는 태극기와 9급 공무원의 보수

이균성 논설위원 입력 2023. 12. 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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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희망은 어디에 있나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두 달 전 ‘흘러내리는 태극기’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세계적으로 구독자 210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에 올라온 영상을 소개한 보도다. 영상 제목은 ‘한국은 왜 망해가는가(Why Korea is Dying Out)’이다. 제목도 신랄하였지만 태극 문양과 4괘가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썸네일 이미지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 귀기(鬼氣)가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할 만큼 오싹했다.

썸네일 이미지가 단지 대한민국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섬뜩한 기분보다 분노의 감정이 먼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쿠르츠게작트를 탓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이미지야 말로 우리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소산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고 훌륭한 만평과도 같다. 내부인인 우리가 볼 수 없거나 보고도 외면할 때 외부인이 우리를 향해 든 거울과도 같다.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가 올린 영상의 썸네일 이미지.

그렇다. 그 거울 속에 비친 ‘흘러내리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현재진행형 초상화다. 사실 그 거울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이미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을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연료가 떨어져 엔진이 멈춘 배에 올라탄 사람들일지 모른다. 저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 하지만 누구도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없어 보인다. 그저 서로를 탓하거나 그마저 포기하거나 좌초될 날만 기다릴 뿐이겠다.

‘흘러내리는 태극기’의 핵심은 저출산이다. 합계출산율 0.7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쿠르츠게작트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2100년에 우리 인구수가 2400만 명으로 줄고 평균연령은 59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늙고 병들어 가난한 나라. 너무 먼 미래의 일이어서 관심이 없는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10만 명 당 자살자수 25.2명. OECD 1위. 출산율은 꼴찌, 자살률은 1위.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죽고만 싶다면 그게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있겠는가. 간혹 비혼과 비출산과 자살을 개인 문제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을 들어 그 불행을 개인의 무능과 불성실의 결과라고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유일한 전략은 각자도생이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부터 생존하고 보자는 생각. ‘흘러내리는 태극기’는 그런 점에서 정글의 결과일 수 있다.

‘흘러내리는 태극기’와 더불어 9급 공무원 보수 이야기를 하려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9급 공무원 보수가 최저임금을 밑돈다고 한다. 그 진위에 대해 논란도 있지만 논란 자체가 서글픈 일이다. 9급 공무원을 동년배 누구보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을 무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성실한 존재라고 말하기는 더 어렵다. 그들은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사람들일 거다.

최저임금제가 뭔가.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한 일을 하기만 한다면 최저생계를 보장하자는 사회적 합의 아니겠는가. 학창시절부터 최선을 다했을 거고 공무원이 된 뒤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일 사람들이 최저생계마저 보장받지 못한다면 과연 이들에게도 무능과 불성실 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최저생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데 결혼은 어떻게 하고 아이는 어떻게 낳나.

군인, 경찰, 소방, 교사, 국가직, 지방직. 9급으로 시작하는 하위직 공무원은 정부를 없앨 수 없는 한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인력이다. 그들 없이 사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나. 각자도생의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사회가 유지되려면 사(私)보다 공(公)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 업무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살아갈 수는 있게 해줘야 하지 않나.

공무원이 된 순간부터 첫 월급을 받고 희망을 잃어버렸을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하지만 이 시대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어디 9급 공무원 뿐이겠는가. 처참한 보수로 공무원 인기가 떨어지고 경쟁률이 낮아져서 국가직이 22.8대 1이라 하는데 거기서마저 떨어진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공무원마저 결혼과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할 판인데 다른 누구에게 결혼과 출산을 장려할 수 있다는 말인가.

‘흘러내리는 태극기’가 그처럼 섬뜩하게 다가온 건 위로받아야 할 그 모든 이들이 흘리는 절망의 피눈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대한민국 경제력이 세계 9위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믿기가 어렵다. 경제력이 세계 9위인 나라에서 어떻게 공무원마저 결혼과 출산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일까. 태극기는 흘러내리고, 국민 눈에서는 절망의 피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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