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평화…두달째 '피의 보복'에 가자지구 중대국면
한숨 돌렸던 일시휴전, 연장은 불발…남부 시가전 개시
민간인 피해 '최악의 참사'…국제사회 중재에도 인질협상 난항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조용했던 유대교 안식일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7일(현지시간) 두달을 넘어가게 됐다.
잠시나마 일시휴전으로 한숨 돌리는 듯했던 전쟁은 후속 인질 협상이 불발된 채 끝내 양측 모두에 막대한 피해를 부르는 시가전에 들어가면서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민간인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중동 정세도 혼돈에 빠지면서 국제 사회는 휴전을 촉구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고 있다.
전쟁 초반 가자 최대 도시인 북부 가자시티에 깃발을 꽂은 이스라엘군은 이제 남부에서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4일 "가자 북부에서 작전의 목표는 대부분 충족됐다"며 전쟁 '두번째 단계'를 공식화했다.
7일 현재 가자지구 제2의 도시이자 남부 최대 도시인 칸 유니스를 포위하고 시내 중심부에 진입하면서 지상전을 본격화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조직원 상당수가 민간인들과 섞여 남부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지휘한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가 남부 칸 유니스의 지하 터널에 숨어있다는 게 이스라엘 주장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두 달간 퍼부은 지상 공습은 1만회를 넘어섰고, 하마스가 만든 지하 터널 입구 800여개를 발견, 500여개를 제거했다.
일시 휴전을 지나온 전쟁은 이제 중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양측은 미국, 카타르, 이집트의 중재로 지난달 24일 오전 7시(한국시간 오후 2시) 일시 휴전에 돌입했다.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 1명당 이스라엘에 수감됐던 팔레스타인인 3명을 석방하는 조건이었다.
휴전은 두차례 연장되며 이스라엘 국적 70명, 외국인 20명의 인질이 풀려났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인질 석방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하마스는 이 중 군인이 있어 우선 석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맞서며 휴전은 이달 1일 종료됐다.
전쟁은 어느 쪽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마스로선 가자지구 최대도시인 가자시티가 거의 점령된 상황에서 칸 유니스마저 빼앗기면 앞으로 조직적 저항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에도 힘든 전투가 될 전망이다.
하마스가 가자 북부를 내주긴 했지만, 전쟁 전 3만명에 달했던 병력 대부분이 건재한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또 하마스의 지하 터널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기 어려운 데다, 전체 터널 중 3분의 1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미 가자지구 사망자는 1만6천명을 넘어섰다. 전체 주거지의 절반이 넘는 5만2천채가 무너졌고, 유엔 추산 180만명의 집을 잃고 피란민 신세가 됐다.
유엔 등 국제구호단체들은 '종말론적 상황', '지옥같은 시나리오', '인간애의 완전한 실패' 등의 표현을 동원해 참담한 가자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전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휴전을 촉구하며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하기도 했다.
전쟁에 관한 주의를 환기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휴전을 촉구하도록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 헌장 99조가 명시적으로 발동된 것은 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 후 처음이다.
안보리 이사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서한에 따라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도록 압박에 나섰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했던 미국도 이스라엘에 국제 인도주의법을 준수하고 민간인 보호 조처를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스라엘에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시간이 몇 달밖에 없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투 시한을 몇 달이 아닌 몇주로 제시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이스라엘도 전쟁 명분을 확보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보고, 전쟁에 속도를 내는 듯 보인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 우려는 여전하다.
남부에는 가자 전체 인구(약 220만명)의 70%가량이 몰려있다. 이미 과밀한 지역인 데다, 하마스 군사시설 상당수가 주택가나 병원 등 민간시설 아래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민간인 피해 확대가 불가피하다.
전쟁은 가자에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온라인에서도 반(反) 유대주의·반 무슬림 갈등이 확산하며 유대인과 무슬림을 겨냥한 차별·혐오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는 전쟁으로 연말 테러 발생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전쟁에 대처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미 무슬림 단체는 바이든 대통령 낙선 운동을 선언했다.
외견상 휴전이 재개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카타르에 보냈던 모사드 중심의 협상단을 철수했고, 하마스도 전면적인 휴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추가 인질 석방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하마스가 이스라엘 기습 공격 당시 무자비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목격자와 의료진 증언이 전해지며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카타르와 이집트 등 중재를 맡은 국가에서 협상 재개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아랍권 국가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6개국 정상도 지난 5일 정기 회의를 하긴 했지만, 선언문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 공격을 비난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은 내년 1월까지는 지금의 고강도 지상전이 이어지고 이후 저강도, 국지전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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