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가 한낮을 피해 이른 아침 꽃을 피우는 까닭은

한겨레 2023. 12. 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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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김용규의 숲과 지혜]

픽사베이

부지런하거나 게으르거나

한낮을 피하고 대신 이른 아침에 부지런히 자신의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한해살이풀에 ‘달개비’가 있다. 농경 시절, 집집이 마당 한쪽에 닭장을 짓고 닭을 키우던 그 시절, 이 풀을 그 닭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아쉽게도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닭장과 닭을 키웠던 장면은 있지만 닭장 근처에서 달개비를 본 기억은 없다. 닭장 또는 닭 볏 등 서식지나 닭의 모양과 연관 지어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산 정약용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는 ‘물명고’(物名攷)에 따르면 이 풀을 부르던 오래된 우리 이름은 ‘닭의 십가비’였다고도 한다. 다만 이 시대의 식물도감은 ‘닭의 장풀’ 또는 ‘달개비’로 정리하고 있다.(이름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와 그 내력 등은 김종원 교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닭의장풀’편을 참고하시라.)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 교장

달개비는 일반적으로 인가 주변, 길가나 냇가, 또는 숲 가장자리 등에 서식한다. 더 구체적인 서식지의 특징은 어느 정도 습기가 있어야 하고 주변의 다른 식물과 다투어서라도 햇빛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잘 살아간다는 점이다. 달개비의 키는 15~50㎝ 정도로 큰 편이 아니다. 그래서 달개비는 큰 키가 아니면서도 햇빛을 잘 받으며 자라는 방편을 개발했다. 그가 자라는 모양(꼴)을 자세히 보면 빛을 향한 그의 분투를 헤아릴 수 있다. 꽃을 피울 가지의 윗부분은 하늘을 향해 곧게 선 모양이다. 반면 줄기의 아랫부분은 가지가 갈라지면서 자라는데, 마디를 형성하면서 옆으로 비스듬하게 자란다. 이런 꼴(態)을 발전시켜 온 까닭은 줄기가 빛이 드는 바깥쪽을 향해 가지를 뻗으면서 비스듬하게 자라면, 자기 위쪽을 차지하는 키가 더 큰 풀이나 나무 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늘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스듬히 자라던 줄기가 땅을 만나면 그곳 땅과 만난 자리에서 달개비의 마디 부위는 새로운 뿌리를 내린다. 부드럽고 연약한 이 풀은 그래서 중간이 잘리거나 뜯기더라도 새로운 뿌리를 활용해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 교장

이른 아침에 피는 달개비

달개비의 꽃은 한여름, 그중에서도 이른 아침에 핀다. 이는 여름철 치열함의 절정인 한낮의 레드오션을 비켜보려는 전략이다. 많은 도감은 그 꽃이 7~8월, 또는 6~8월에 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탓인지 9월이 넘도록 피는 경우도 흔하다. 꽃잎은 전부 여섯 장이다. 위쪽으로 두 장, 아래쪽으로 넉 장이다. 아래쪽으로 향한 꽃잎의 색깔은 반투명, 혹은 흰색. 따라서 도드라짐이 없다. 이와 달리 위로 향한 꽃잎은 그 색깔과 모양 모두 아주 특별하다. 이 두 장의 꽃잎 색깔은 이따금 비 온 뒤 올려다본 하늘에서 만나게 되는 쪽빛의 새파란 하늘빛을 닮았다. 그 모양은 얼핏 보면 미키마우스를 닮았다. 더없이 귀엽고 앙증맞아 시선을 빼앗긴다.

꽃에 달린 여섯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도 꽃가루받이를 위해 아주 특별하게 고안되어 있다. 여섯 개의 수술 중, 위쪽 네 개는 얼핏 보면 노란색의 꽃가루를 풍성하게 묻혀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모두 중매쟁이를 유인하기 위한 헛수술일 뿐, 진짜 꽃가루는 묻어 있지 않다. 이 네 개의 헛수술은 처음에는 꽃밥 형상의 노란색만 띤다. 하지만 암술이 수정할 준비가 마무리되면 매개자를 향해 ‘여기에 꿀이 있어’라고 신호라도 하듯 그 노란색 꽃밥 모양의 중앙에 짙은 갈색의 표식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네 개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헛수술 하나에만 그 표식이 드러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매개자가 더 절박해지면 나머지 세 개의 헛수술에도 그 사인을 표시한다.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 교장

이 꽃에 접근하는 가장 흔한 곤충은 꽃등에나 꿀벌인데, 이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그 표식이 바로 중매쟁이들을 현혹하는 달개비꽃의 가짜 허니가이드(honey guide)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짜 허니가이드에 끌려 접근한 뒤 빨대나 혀를 꽂고 꿀을 찾아보려 해도 곤충들은 꽃가루도, 꿀도 얻을 수 없다. 그곳은 얻어먹을 무엇도 마련해 두지 않은 헛수술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매개곤충의 입장에서 자신의 노력은 소득 없이 끝나고 만다. 하지만 이때 달개비는 자신의 의도한 목적, 즉 꽃가루받이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달개비는 진짜 꽃가루가 묻어 있는 두 개의 수술을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뜨려 놓았는데, 유인하는 위쪽의 수술에 끌려 벌이 달개비꽃에 접근하여 앉을 때, 이 아래쪽 수술에 몸을 지탱하게 된다. 이때 위쪽 수술 네 개와 아래쪽 수술 두 개 사이에 자리 잡은 암술은 헛수술을 열심히 빨아보는 벌의 몸에 자연스레 밀착되며 수정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달개비꽃은 매개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중심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이 꽃에 중매쟁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가장 흔하게 찾는 곤충은 ‘꽃등에’지만, 이 자는 몸이 작아서 달개비가 고안해 놓은 꽃가루받이의 메커니즘, 즉 접근하면 자신의 꽃을 수정시키도록 설계된 구조에 잘 들어맞지 않는 곤충이다. 벌은 이 꽃의 의도와 메커니즘에 딱 맞는 몸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얻을 게 별로 없는 꽃이라는 걸 아는지 달개비꽃을 찾는 경우가 흔치 않다. 달개비는 여름철 한낮의 치열함을 피해 이슬이 맺혀 있는 이른 아침부터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진화한 꽃이지만, 이런 이유로 중매쟁이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일까? 한낮이 되어서도 매개자가 찾지 않으면 달개비는 마침내 자가수분을 단행한다. 꽃가루를 만들어 둔 아래쪽 두 개의 긴 수술이 “암술을 부둥켜안고서 빙글빙글 꼬며” 스스로 수정하는 방법을 쓴다. (김종원, 앞의 책, 같은 부분 참조)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 교장

밤에 피는 야화, 달맞이꽃, 분꽃, 그리고 하늘타리

달개비가 이른 아침에 피는 전략으로 한낮의 치열함을 회피하는 꽃이라면, 저녁 시간과 밤에 꽃을 피움으로써 한낮의 높은 경쟁을 회피하는 꽃들도 있다. 이른바 ‘밤에 피는 야화’들이다.

먼저 흔히 알려진 ‘달맞이꽃’을 만나보자. 두해살이 풀인 달맞이꽃은 씨앗에서 발아한 첫해에는 방석 모양(로제트, rosette)의 뿌리잎(根生葉)으로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겨울을 견디듯 건너며 살다가 이듬해 곧고 높이 자라면서 한여름에 꽃을 피운다.

노랗게 피는 달맞이꽃은 말 그대로 ‘달을 맞이하며 피는 꽃’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달이 뜰 때만 피는 꽃이라고 오해하지는 말자. 달이 뜨는 시기건 아니건 저녁 무렵에 피는 꽃이라는 점을 짚어 지어진 이름이니까. 따라서 7~9월 여름철에 이 꽃은 그믐에도 피어난다. 어둠 속에서 이 꽃은 밤하늘 달처럼 은은한 빛을 드러내고, 가라앉는 공기 속에서 가녀린 향기를 발한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태극의 양상이 그러하여 낮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생명이 있다면 기어코 밤을 삶의 무대로 삼는 생명이 있는 법. 여름철 너무도 흔한 밤 곤충인 나방과 넘쳐나는 모기, 파리까지도 이 꽃으로 파고든다. 달맞이꽃은 그렇게 여름철 치열한 한낮을 비켜 피는 전략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세계를 잇고 있다.

참고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달맞이꽃은 분류학적으로 대부분 북미 원산인 ‘겹달맞이꽃’이다. (남미 원산의 달맞이꽃이 있으나 우리나라에 자생하는지는 의문이고(김종원, 앞의 책, 달맞이꽃 부분 참조), 여기서는 다만 글의 주제에 집중하면서 통칭하여 달맞이꽃이라 칭하고 있음에 주의할 것.)

달맞이꽃이 귀화하여 우리 땅의 빈터나 길가, 묵정밭이나 냇가 등 비교적 햇살 좋은 땅에서 여름밤을 무대로 살아가는 풀이라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의 여름밤 곤충과 벌레들을 겨냥해 피고 지면서 살아온 존재가 있다. ‘하늘타리’가 그 주인공이다. 하늘타리의 이름에 관한 기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두 명칭은 천을근(天乙根) 또는 천원을(天原乙)이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하ᄂᆞᆯ타리불휘’로 기록되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금은 하늘타리로 정리되었다.

하늘타리는 숲 가장자리나 산기슭, 밭둑 등 양지 또는 반음지를 터전으로 삼고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덩굴손을 활용해 주변의 사물이나 식물을 감고 오르면서 자란다. 7~8월 한여름에 하얀색으로 피는 하늘타리는 꽃갓(花冠)의 가장자리를 가는 털실 모양으로 장식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아마 더 분명하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방법일 것이다. 하늘타리의 꽃 역시 한낮을 회피한다. 대신 저녁에 피기 시작하는 꽃은 밤새 중매쟁이들을 기다려 꽃가루받이를 도모한 뒤 아침이 오면 시들기 시작한다. 하늘타리 역시 달맞이꽃 이상으로 신비하고 정겹고 아름다운 꽃이다.

그 밖에도 집 주변 화단이나 공원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으로 분꽃이 있는데, 역시 한여름 한낮을 피하여 밤에 피는 꽃이다.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 교장

오래오래 매개자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피는 꽃들

마지막으로 여름의 치열함을 뚫고 나가는 다른 방식이 하나 더 있다. 오래오래 핌으로써 매개자들을 기다리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식물로 무궁화, 배롱나무, 자귀나무 등을 꼽을만하다.

무궁화 먼저 살펴보자. 관습적으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취급되고 있는 무궁화는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라는 노랫말에도 묘사되어 있듯이 개화기간이 긴 여름꽃이다. 꽃 대부분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일 때 무궁화는 여름의 한복판인 7월부터 문턱을 넘은 가을인 10월까지 100일여에 걸쳐 매일매일 오래도록 피는 꽃이다.

무궁화를 충일화(忠日花)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의 해만 섬기는 꽃’이란 뜻이다. 무궁화의 꽃 하나하나는 오직 하루만 피는 꽃이어서 해가 뜨는 아침 일찍 피어나고,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면 꽃잎을 오므리면서 시든다. 결과적으로 피어난 꽃이 그날 떠오른 단 하나의 해만 만나고 사그라드는 셈이 된다. 무궁화가 100일 동안 핀다는 것은 그렇게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이 하루하루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기를 석 달이 넘도록 반복하면서 개화기간을 유지하는 것을 이른다. 아마 오랜 시간 개화함으로써 매개자를 넉넉히 만나면서 피워낸 꽃을 수정하려는 전략일 것이다.

다음으로 배롱나무는 ‘나무(木) 백일홍’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개화기간이 길다. 자귀나무도 그렇다. 특별한 색과 모양을 갖추었으면서도 개화기간마저 긴 이 식물들은 그렇게 여름의 치열함을 뚫고 나가 마침내 결실을 본다. 자귀나무 역시 긴 시간 꽃을 피우며 여름꽃 세계의 주인으로 산다.

여름을 사는 숲 생명들이 우리에게 일러준다. 여름은 좋은 계절이다. 동시에 여름은 극복해야 할 치열한 숙제를 품고 있는 계절이다. 그 어디에도 그 어느 시간대에도 내게 유리하기만 하고 좋고 바람직하기만 한 시공간은 없다. 그것이 태극이 빚는 질서, 생명은 모두 다만 그 구조와 리듬 위에서 저마다의 길에 놓인 숙제를 풀어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김용규(충북 괴산, 여우숲 생명학교 교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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