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명이 추모한 장례식…페미사이드 비극에 들끓는 이탈리아[플랫]
이탈리아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대생의 장례식이 1만명 이상의 추모객이 몰려들었다. 전국으로 생중계된 피해자의 장례식에서 유가족은 “끔찍한 폭력의 재앙을 종식하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동북부 파도바에서 지난달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줄리아 체케틴(22)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장례식이 열린 대성당 인근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약 1만명의 추모객이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명문 파도바대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체케틴은 지난달 18일 알프스 산기슭 외딴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일주일 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뒤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이후 남자친구였던 필리포 투레타는 독일에서 검거돼 이탈리아로 송환됐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체케틴의 학과 동기인 투레타는 여자친구 체케틴이 자신보다 먼저 졸업한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장례식에는 카를로 노르디오 법무부 장관, 루카 자이아 베네토주 주지사 등이 참석해 운구 행렬에 동참했다. 자이아 주지사는 ‘애도의 날’을 선포하고 청사에 조의를 표하는 반기를 게양했고, 전국의 대학들은 이날 장례식이 끝난 오후 2시까지 모든 수업을 중단했다. 체케틴이 다녔던 파도바대는 조만간 그에게 학위를 수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체케틴의 아버지 지노는 추도사에서 “줄리아의 목숨은 잔인하게 빼앗겼지만 딸의 죽음은 여성에 대한 끔찍한 폭력의 재앙을 종식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슬픔에서 우리는 대응할 힘을 찾고, 그 원동력으로 비극을 변화로 바꿔야 한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장례식 현장은 TV로도 생중계됐다.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들은 야외 스크린을 통해 장례식을 지켜봤다. 많은 사람이 페미사이드를 추방하자는 의미로 빨간색 리본을 옷깃에 달았다. 이들은 여성 폭력에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종과 열쇠를 흔들었다.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고 보호 강화 조치를 촉구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국제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인 지난달 25일에는 로마, 밀라노 등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였다.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인 조르자 멜로니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내무부에 따르면 올해 이탈리아에서 살해된 여성은 107명에 이르는데, 이 중 88명은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살해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에 남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젠더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 최서은 기자 cielo@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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