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마녀의 존재 지우고 인간의 탐욕 강조한 뮤지컬 '맥베스'

입력 2023. 12. 7. 10:00 수정 2023. 12. 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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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신작 뮤지컬 '맥베스'. 세종문화회관 제공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나중에 집필된 '맥베스'는 우연히 촉발된 탐욕을 통제하지 못해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되는 맥베스 장군의 이야기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오는 맥베스에게 뱀의 속삭임 같은 예언으로 탐욕을 불어넣는 존재로 세 마녀가 등장한다. 마녀의 첫 번째 예언은 맥베스의 심장에 왕위에 대한 욕망을 심어 놓고 왕과 자신의 동료를 살해하게 만든다. 두 번째 예언은 불가능한 조건을 달아 안심시키지만, 교묘히 맥베스를 속여 파멸로 이르게 한다. 나라의 큰 공을 세운 장군이 갑자기 반역자에서 폭군으로 전락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 제공자가 바로 마녀였다. 초자연적인 마녀는 내면의 깊은 욕망의 대리물로, 또는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운명으로 다양하게 해석돼 공연됐다. '맥베스'를 각색할 때 첫 질문은 마녀들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가일 것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이 2023년 하반기 신작으로 '맥베스'(김은성 작, 박천휘 작곡, 조윤지 연출)를 올린다고 했을 때도 가장 궁금한 것은 마녀들의 존재였다. 각색은 김은성 작가가 맡았다. 김 작가는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1970년대 개발 이전의 뽕밭 잠실로 공간을 옮겨 각색하는 등 고전을 한국적 상황으로 성공적으로 번안한 경험이 풍부하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맥베스’는 한국적 상황으로 옮겨오는 대신 중심 갈등을 현실적으로 조정했다. 맥베스의 탐욕에 작은 속삭임으로 기름을 부었던 초현실적 마녀들의 존재를 과감히 생략한 것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신작 뮤지컬 '맥베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전쟁에서 공을 세운 맥베스가 던컨왕을 암살하게 되는 동기는 공이 많은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던 던컨왕의 약속 불이행, 전쟁에서 도망친 무능하고 겁 많은 왕자 말콤이 왕위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불만, 그리고 기나긴 전쟁에서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와 어린 아들에 대한 죽음 등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부여된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맥베스를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은 뮤지컬에서도 맥베스 부인이 맡는다. 뮤지컬의 맥베스 부인은 원작보다 훨씬 호전적인 인물로 야전 생활을 했던 무사의 기질을 지녔다. 던컨왕과 왕자를 제거하는 일에 직접 뛰어드는 대담함을 보이고, 맥베스가 왕위에 오른 후에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맥베스가 왕위에 오른 후의 극을 끌고 가는 원동력은 자신들의 만행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왕위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탐욕이다.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왕의 권위를 거추장스러워하면서도 권력의 마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신하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원작의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살인의 원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잠들지 못했다면, 뮤지컬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며 잠들지 못한다.

스코틀랜드 왕국에서 정치적 야심을 품은 인물들의 아귀다툼으로 그려 낸 서울시뮤지컬단의 ‘맥베스’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준다.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을 새롭게 보게 했고 초현실적인 존재 대신 납득할 만한 인간의 욕망을 갈등의 주축으로 가져와 공감대를 높였다. 박천휘의 음악은 다양한 스타일로 인물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했다. 특히 맥베스 부인의 야심을 드러내는 노래들은 이아름솔(맥베스 부인 역)의 놀라운 가창력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주었다. 코러스처럼 다양한 역을 수행하며 장면 장면마다 재미를 유도한 서울시뮤지컬단 배우들의 앙상블도 뛰어났다. 극은 주로 성 안을 배경으로 진행됐는데 무대는 그리스식 공연장을 연상시키며 인간의 부질없는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연극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몇몇 곡에서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설명적인 가사가 음악의 맛을 떨어뜨렸고, 맥베스의 전쟁 영웅의 면모를 강조한 초반부와 후반부의 액션 장면은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중반부 이후 맥베스의 존재감이 떨어졌으며, 여전사로 만든 맥베스 부인이 동료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 설정은 갑작스러웠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도전임에 틀림없다. 창작 초연임을 감안하면 이만큼의 성취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마지막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반전은 ‘맥베스’의 의미 있는 번안으로 손꼽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12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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