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한국과 관계회복”? 北 기술지원 내역부터 밝혀라[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3. 12. 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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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푸틴 대통령과 회담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2023.9.14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일 양국 관계 회복이 한국에 달렸다며 또다시 모호한 발언을 했다.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21개국 대사들에 대한 신임장 제정식에서다. 푸틴은 “두 나라 협력이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파트너십 궤도로 복귀할지는 한국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푸틴의 발언은 한국을 점잖게(?) 압박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 있다. “러시아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데서 지금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푸틴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 분야는 상호 이익이 됐고 한반도 상황의 정치, 외교적 해결을 위해 함께 일했다”며 과거 추억을 꺼내든 것도 그 증거다.

하지만 러시아가 ‘준비돼 있다’는 표현은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해 뭐가 준비돼 있길래 이젠 우리한테 달렸다며 책임을 떠미는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우리야말로 언제든 러시아와 협력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단 러시아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전쟁을 멈추고 정상(normal) 국가로 회귀한다는 조건에서다. 이것이 안된다면 우리는 전쟁을 도발한 나라와 전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없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만큼 대규모 피해를 낸 전쟁에 중립적 대응만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유럽, 일본이 전쟁을 비판하고 피침략국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가운데 우리도 이들의 노력에 작게나마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푸틴이 말한 러시아의 준비 태세는 우리의 이런 사정부터 이해해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양국 정상은 이제껏 국제무대에서 얼굴 한번 마주한 적이 없다. 당연히 윤 정부 들어 한반도 4강국 중 러시아와의 협력은 개점 휴업 상태다. 누구 책임이 더 큰 지는 뻔하다. 푸틴은 우리가 우크라이나 얘기만 꺼내면 겁박했고, 북한과의 밀월을 과시하며 우리 안보 불안을 가중시켰다. 푸틴은 2022년 10월 러시아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양국 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대국에 ‘파탄’이라는 비외교적 수사를 써가며 자극한 것은 러시아가 먼저다. 푸틴은 또 “우리가 북한과 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재개하면 한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라며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지난달 북한 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있었다는데 대해 한국인들이 분개하고 있음을 푸틴은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가 포탄을 받은 대가로 엄청난 기술을 제공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고가의 기술 이전은 러시아 군부와 기술 관료들의 반발을 초래하는데다 기술 통제는 공산 정권 시절부터 매우 엄격하다. 다만 우리로서는 러시아가 언제든 북한 군사력 증강에 도움을 줄 가능성을 봤다는 점에서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다. 지난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이 “(한국의 무기 지원 시) 북한에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겁박한 것도 우린 잊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는 대한민국 안보와 평화를 겨냥한 도발이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것도 러시아를 불신하게 된 국민 정서를 담은 것이다.

이런데도 푸틴이 양국 관계가 한국에 달렸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만큼 북한 도발을 억제하는데 안보상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나토 동진을 막는 게 최대 안보 현안인 것처럼 한국은 외부 힘을 빌려서라도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아야 한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 증강이 위협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푸틴이 싫어하는 미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에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가 북한을 설득해 전쟁 방지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푸틴은 자문해보기 바란다. 2017년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도발을 막는데 러시아 역할을 주문하자 푸틴은 “러시아는 1년에 4만t 가량의 대북 석유 수출을 하는 정도”라며 영향력이 크게 없다고 실토한 바 있다.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할 당시 우리가 기대한 것은 소련이 북한 움직임을 감시하고 막아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소련 해체 후 등장한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은 급감했고 한반도 안보에는 미국, 중국과의 협력이 더 중요해졌다. 결국 푸틴은 한국이 러시아에 원하는 게 뭔지부터 파악하고 나서 본인들 준비를 얘기해야 한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이 끝나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 유대를 넓힐 수밖에 없다. 대리전을 치른 서방과는 당분간 같이 가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번 푸틴 발언은 한국에 대한 구애일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지 의사를 밝힐 때마다 크렘린이 강성 발언을 쏟아낸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과의 협력을 원해서다. 한국과 척을 지고 싶지 않은데 한국 정부가 괜한 발언으로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러시아를 상대로 더 이상 자극적인 발언을 삼가고 종전 후 양국 관계 회복을 모색해가야 한다. 전쟁 기간 우크라이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한하는 러시아인들의 입국비자 면제를 유지해준 것은 우리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의 끊을 놓지 않으려는 하나의 사례다. 푸틴도 뭣 하나 크게 얻을 게 없는 북한이 장기적인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업기술과 K컬처를 가진 한국과의 협력이 수백 배 낫다는 점 역시 푸틴과 러시아 국민 모두 알고 있다. 푸틴이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북한에 대한 기술지원 내역을 명쾌하게 밝히는 것이 한국과 관계 정상화의 시작이다. 우리는 그것만 충족된다면 언제든 러시아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을 푸틴은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한-러 관계 정상화? 우리가 아니라 러시아 너네한테 달렸다고!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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