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는 정해져있다”… 선거 거들떠도 안보는 홍콩 시민[Global Focus]

박준우 기자 2023. 12. 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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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10일 홍콩 구의회 선거 ‘무관심’
선거제 개편후 ‘애국자’만 출마
민주진영 후보못내 친중파 독식
선출직 452석 → 88석 대폭감축
민주화 시위당시 71% 투표율이
유권자들 외면속 20%대 머물듯
출마자도 의욕 잃고 공약 안 내
출마봉쇄 민주진영 선거 보이콧
당국, 퇴직공무원 등에 투표독려
구의회 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 5일 홍콩의 거리에서 한 출마자의 선거운동원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번 구의회 선거에 민주 진영의 출마가 원천 봉쇄되면서 역대 최악의 선거율이 예상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jwrepublic@munhwa.com

오는 10일 치러지는 홍콩 구의회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4년 전인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71%에 달했던 투표율이 20%대에 머물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일 정도다. 선출직 의석수도 대폭 줄어든 데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애국자’만 출마하도록 바뀐 선거 시스템에 야당 진영 출마가 원천 봉쇄되면서 유권자들은 물론 출마자들도 의욕을 잃은 무의미한 선거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당국은 새로운 제도하에 치르는 선거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선거에 무관심한 현장 = 홍콩 프리프레스(HKF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선거를 사흘 남겨놓은 7일 홍콩 곳곳에서는 출마자들의 포스터가 걸려 있고 투표를 독려하는 광고물들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사람들의 투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 남성은 HKFP에 “선거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요리 메뉴를 제공하는 것과 같지만 이미 결정된 것”이라며 “과거에는 후보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였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출마한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열심히 유세를 다니는 후보들은 파키스탄 등 아시아계 이민자 후보들이고 홍콩이나 중국 출신 후보들은 SNS의 선거 공약도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고 HKFP는 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구의회 선거에 대한 주민의 무관심 속에 출마자 약 5명 중 3명꼴로 지역구를 위한 특별한 공약 없이 모호하고 일반적인 슬로건만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법 개정으로 투표 의지 상실 = 이같이 관심이 부족한 것은 이번 선거가 사실상 결과가 정해진 선거이기 때문이다. 4년마다 치러지는 홍콩 구의회 선거는 직선제 선출 비중이 90%가 넘어 홍콩 민주주의의 ‘보루’로 인식돼 왔다. 앞선 선거에서 민주 진영은 선출직 의석 452석 중 392석을 차지하며 홍콩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선거제 개편으로 유권자가 직접 뽑는 선출직이 기존 452석에서 88석(19.8%)으로 대폭 감축됐다. 여기에 중국이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홍콩의 선거제를 개편한 뒤 구의회 선거 입후보 희망자는 각 지역구 위원회 3곳의 위원 최소 9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한다. 해당 위원회는 친중 진영 인사들로 채워졌다. 지난 10월 29일 마감된 후보 등록에서 민주당과 홍콩민주민생협진회(ADPL) 등 두 민주 진영 정당과 자칭 중도파인 신스위(新思維)도 모두 등록에 필요한 추천을 얻지 못해 후보를 내지 못하면서 친중 진영의 ‘독식’이 예정돼 있다. 홍콩에서 민주 진영 없이 구의회 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1985년 이후 처음이라고 SCMP는 설명했다.

출마가 봉쇄된 민주 진영은 투표 거부로 맞서고 있다. 홍콩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는 5일 성명을 통해 현재 독일에 체류하고 있는 유튜브 정치 평론가 웡시아착에 대해 구의회 선거 보이콧을 선동한 혐의로 법원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웡은 여러 소셜미디어에 선거 보이콧을 촉구하는 영상 등 게시물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당국, 투표 독려 하면서도 감시 경계 강화 = 정부 당국은 민주 진영에 맞서 투표 독려를 위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높은 투표율을 통해 친중 진영의 투표 승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구의회 선거를 방해하는 시도에 대해 엄격히 대응하겠다고 재차 경고했다. 특히 리 장관과 에릭 찬 정무부총리는 17만 공무원에게 투표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구의회 선거 투표를 독려했다. 잉그리드 융 홍콩 공무원 사무국장은 10여 개 퇴직 공무원 단체에 투표 독려 서한을 발송했다고 알리면서 “퇴직 공무원들은 구의회 선거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시민의 책임을 다하라”고 호소했다.

중국 당국은 감시와 경계 태세를 높이고 있다. 홍콩 경찰 수장인 레이먼드 시우 경무처장은 “구의회 선거 당일 각 투표소에 최소 2명의 경찰관을 배치하고 전략 지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지난달 15일 주룽(九龍)반도 등 일부 지역에서 순찰 활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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