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족 뒷바라지 하시더니… 꽃처럼 웃다가신 어머니[그립습니다]

입력 2023. 12. 7. 09:00 수정 2023. 12. 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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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정정자(1934∼2022)
내가 ‘2017년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봉사대상(공직자 부문)’을 받았을 때 동료 시인들이 준 꽃다발을 안고 어머니는 참 기뻐하셨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술을 많이 드셨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계셨다. 그땐 다른 아버지들도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우리 아버지만 유난히 술을 좋아하고 어머니와도 자주 다툰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지는 어떤 일이든 가족과 상의하는 법이 없었고 친구나 이웃들의 말에 혹해서 잘 넘어간 탓에 애먼 어머니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까지 돌보며 힘겨운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나는 충남 부여군 남면 용성리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 당시 시골 생활은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가난에 찌들며 힘겹게 살았다. 더구나 적지 않은 식솔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아야 하는 어머니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가족은 피란민처럼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살이 이후에도 아버지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고 급기야 위암에 걸려 병석에 눕게 되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공장 식당에 취직하여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우리 5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전선 아닌 전선을 오가야만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어머니의 손은 물이 마를 새 없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잠시 위암을 극복했으나 4년 남짓 지나 다시 발병해서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즈음 살림은 좀 나아졌지만, 어머니의 고생은 그치지 않았다. 서울 생활 역시 시골 생활 못지않게 하루하루가 힘들었고 삶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악몽이었다. 겨울이면 연탄불을 아껴가며 끼니와 난방을 해결해야 했고 물을 끓여서 머리를 감았으며 부엌에는 쓰레기를 낙하해서 버리는 작은 문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형편에도 어머니가 공장 식당에서 고기를 가져온 날이면 우리는 잔칫날처럼 행복했다. 더러는 남은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간 덕분에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했다. 어려운 도시 살림에서 어머니의 식당 일은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었다. 정작 본인은 돌보지 못하고 5형제를 먹여 살리느라 헌신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 등으로 항상 마음이 무거웠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사시사철 바깥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어머니에게도 소녀 같은 감성이 있다는 사실을 자라면서 알았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노란 개나리꽃을 병에 꽂아 놓고 향기를 맡아 보기도 했고 가끔은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씩 꽃병에 시선을 두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신문팔이를 해서라도 예쁜 프리지어 한 다발이라도 안겨드릴 생각은 왜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오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늘 고단한 일을 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입을 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머니가 공장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TV를 보던 어머니가 누군가와 다투듯 크게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니 그것은 치매의 시작이었다. 예고도 없는 상태에서 뇌 신경이 손상되어 혼자 소리를 지르고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니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젊었을 적 어머니는 무표정한 얼굴이 많았는데 치매이지만 그나마 자주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어머니가 결국 고관절 수술에 골다공증까지 겹쳐 병원에 다니다가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 무렵 나는 공무원을 퇴직한 후라 이제라도 더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한 삶이었지만 나를 꿋꿋하게 자라도록 해주신 어머니에게 이젠 내가 웃음을 돌려드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은 왜 이렇게 야속하기만 한지. 나의 계획은 실행도 못 해 보고 끝나버렸다.

그 어떤 자식이 부모가 그립지 않으랴만 날씨가 차가워지면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난다. 온 식구들이 따뜻한 물에 세수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혼자 찬물에 머리를 감으시던 모습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용주(시인·전 서울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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