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상상의 오락실
1980년대 후반, 전자오락실이 우리 동네에 처음 등장했다. 그 충격은 정말 엄청났다. 거의 모든 아이가 틈만 나면 오락실로 달려갔다. 내 친구들은 집에 찾아가서 없으면 반드시 오락실에 있었다. 오락기 수십 대는 수십 가지 세상이었다. 단돈 100원이면 더 이상 평범한 초등학생 꼬마가 아니었다. 우주의 수호자가 될 수도 있고 마왕을 물리칠 수도 있었다.
문제는 ‘단돈 100원’을 가진 아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동네 아이들은 비슷하게 집이 어려웠다. 더군다나 오락실은 어른들에게 ‘안 좋은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집이 어려운데 가뜩이나 안 좋은 곳을 가라고 100원을 흔쾌히 주는 부모님은 없었다. 한 친구가 운 좋게 100원을 구하면 우르르 오락실로 몰려가서 그 친구가 하는 게임을 다 같이 구경했다.
그러나 100원 하나로 끝을 볼 수 있는 게임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돈 100원이 전부인 친구의 오락기는 금방 ‘게임 오버’가 되어버렸고, 우리는 입맛을 다시며 돈 많은 아이들이 동전을 쌓아놓고 마음껏 버튼을 두들기는 광경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 당시 오락실 사장님들은 자본 개념이 참으로 명확했기에 공짜 구경을 오래 하는 아이들은 곧바로 귀가 잡혀 쫓겨났다. 그렇게 몇 번이나 쫓겨난 끝에 우리는 어느새 오락실 블랙리스트가 되어 맘 편히 구경하러 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한번 엿본 수십 가지 세상은 우리를 끝없이 유혹했다. 100원이 없어서 모험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들에게 너무 잔혹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100원이 없는 우리를 위해 ‘공짜 오락실’을 최초로 발명한 친구들이 나타났다. 어떤 친구에게는 책상이 게임 화면이었다. 책받침을 축구공처럼 오려서 연필로 튀기는 축구 게임을 만들었다. 어떤 친구에게는 바둑판이 게임 화면이었다. 여러 바둑알로 테트리스 도형을 만들었다. 자기 손으로 그 바둑알을 움직이며 바둑판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게임 버튼도 바둑알로 만들었다. 흰 돌을 누르면 도형이 오른쪽으로 돌고, 검은 돌을 누르면 왼쪽으로 돌았다. 그렇게 바둑판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수제 테트리스를 했다. 어떤 친구에게는 노트가 게임 화면이었다. 페이지마다 미로를 만들어서 길을 선택할 때마다 해당하는 페이지를 넘겨서 흥미진진하게 미로를 탐험하게 만들었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우리만의 오락실은 정말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서로 경쟁이 붙어서 하루에도 몇 가지씩 기상천외한 게임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공짜 오락을 만들어내는 동아리’처럼 되어버렸다. 쉬는 시간마다 모여서 각자 게임을 모아놓고 즐겼다. 종종 모르는 친구가 찾아와서 한 판만 시켜 달라고 졸랐다. 다른 반 친구가 자기가 만든 게임을 가지고 찾아와 함께 즐기기도 했다. 화려한 화면도 음악도 없었지만, 사람 손으로 움직이고 친구의 외침으로 조작하는 상상 오락실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다 같이 즐길 수 있었다.
100원이 있는 친구가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더 재밌는 상상을 하는 친구가 주목받았다. 게임을 즐긴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상을 즐겼다. 우리 주머니에는 늘 100원이 없었지만, 우리 머릿속엔 늘 100가지 상상으로 가득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다른 학교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상상 오락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는 놀거리가 너무 많다. 게임기도 있고 컴퓨터도 있다. 다양하게 가입한 OTT 채널도 있다. 틈날 때마다 잽싸게 할 수 있는 스마트폰 게임도 많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주 손이 가지 않는다. 너무 많고 너무 쉽게 할 수 있다 보니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너무 많고 쉬워서 허전한 순간이 온다. 가끔 한밤중에 그런 느낌이 들면, 유튜브에서 그 시절 오락실 영상을 틀어놓고 한동안 들여다본다. 그렇게 한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시절 우리가 만들어낸 공짜 오락실이 떠오른다. 지극히 작고 미약한 현실에서, 지극히 크고 풍요롭게 상상한 우리의 모험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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