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조직의 폭력에 맞서는 개인의 용기
화제작 '서울의 봄'을 보았다. 극의 주인공인 전두환을 생각해본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인 전두환은 2년여 전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전직 대통령의 사망사건을 보도하던 언론의 건조하고 싸늘한 시선과 여전했던 시민들의 분노는 그가 현대사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여과 없이 보여줬다.
한국인들이 전두환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들은 그의 재임시 치적이 아니라 그가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인 반란(12·12사태)과 살인(5·18민주화운동) 등의 이미지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루지 못한 경제성장률을 몇 차례나 달성하고 복지정책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계획했으며 최저임금법을 제정하는 등 나름의 사회경제적 성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전두환은 결단코 1980년대 광주의 죽음을 극복할 수 없고 결국 그의 집권시기를 어둠의 시대로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애초에 전두환의 통치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일까.
역사에서 가정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지만 시계를 1979년 12월12일 밤으로 돌려보면 우리는 쿠데타의 주역들인 전두환과 육사 11기들이 아닌 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국가기관이자 자연인이던 이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봄'에서 나온 장면들은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섞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시가지 전투 장면은 완전한 허구지만 그에 앞서 신군부가 12월12일 밤 상관인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를 체포하고 그들의 행위를 대통령 최규하로부터 재가받는 과정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신군부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한 줌밖에 안 되는 반란군을 신속한 정규군 출동으로 막을 수 있었던 장면일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하도록 기대됐던 당시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은 이들 전두환 일당의 계략 앞에 왜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정세 판단이 우선 지적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 모두가 신군부의 야욕에 맞설 만큼 공적 지위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신군부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 한 욕망 역시 기억돼야 한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권력을 향유할 줄 알았지만 체제의 위험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 그것을 수호할 용기는 없었다.
오히려 조직과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 한 자유로운 개인이 쿠데타로부터 국가를 수호하려 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극 중 이태신(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직을 제안받고 몇 차례나 거절한다. 그 거절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령관직의 엄중한 책무를 개인으로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의 봄' 감독 김성수는 전작 '아수라'에서도 강고하고 폭력적인 조직(검찰과 행정권력)에 맞서는 개인을 조명하며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개인의 선택과 저항을 찬찬히 살펴봤다. 두 영화에서 쿠데타를 추진하는 하나회라는 조폭과 각각의 조직 논리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검찰·행정 조폭의 논리는 다르지 않다. 조폭은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며 어떤 면에선 개인의 희생과 자기 조직의 안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조직 자체의 유지와 확장을 가능케 한다. 이 강고하고 폭력적인 조직의 안과 밖에 있는 개인이 어떤 저항을 하려면 그것은 자신의 실존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조폭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는가. 조폭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조폭 논리는 곳곳에 남아 있지 않은지 의심이 든다. 합리적인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까라면 까라'는 조직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서울의 봄'을 보고 자유로운 개인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이유다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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