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세대공감] 식지 않는 MBTI 열풍에 숨겨진 Z세대의 고민

입력 2023. 12. 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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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30세대의 소개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소재는 무엇일까? 취미? 사는 곳? 출신 학교? 아니다. 일단은 자신이 성격유형검사(MBTI )어느 분류에 속하는지, 상대는 어떤 성향인지에 대한 것부터 확인하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쩌면 그들은 만나기 전부터 상대의 MBTI가 뭔지 이미 알고 나왔을 수도 있다. 마치 상대방의 출신 학교, 고향, 친구들 사이에서의 평판, 외모 정도를 미리 파악하듯 말이다.

근래 몇 년간 지속된 MBTI에 대한 관심, 때로는 ‘집착’으로 보일 정도의 MBTI 열풍은 “지겹다” “정확하지도 않고, 자기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답변으로 구성되는 유사 심리학이다” 등의 비판 속에서도 쉽게 사그라들 줄 모른다. 심지어 Z세대부터 시작돼 밀레니얼 세대로, 그리고 이제는 X세대와 그 윗세대로까지 유행이 번져나갔다. 혹자는 “한국인이 분류하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 아니냐”고도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아예 자신의 프로필에 MBTI 성향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걸어놓은 이가 많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히 ‘분류의 재미’를 넘어선 ‘정체성의 일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MBTI 열풍은 사실 Z세대가 가진 본질적 고민과 관련이 깊다. 그들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선택해왔고, 기존 세대보다는 좀 더 느슨한 연결을 추구해왔다. 예전처럼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연결되는 집단주의를 거부한 상태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황의 시기마저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도 알기 어렵게 돼 버린 것이다. 이 틈새를 치고 들어온 게 나름 16개 분류체계로 그럴싸하게 나눠지는 MBTI였다. MBTI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장황하게 설명하기 전에 이미 많은 부분을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개인화’ 시대라는 특성도 더해졌다. 예전처럼 매스미디어를 통해 공통의 뉴스를 접하지 않는 시대다. 이전처럼 시청률 50%가 넘는 ‘국민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공통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자신의 휴대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 안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각자 관심사에만 맞는 뉴스를 접하다 보니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스몰 토크’ 소재 자체가 상당히 부족하다. 이때 MBTI에 대한 대화만큼 자연스럽고 차별적 요소가 없으면서도 흥미로운 주제는 없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 MBTI가 매우 편한 측면이 있다. 물론 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고 하기에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저 사람은 T성향이라서 그런가 보다”라고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예전에 유행하던 ‘혈액형 성격론’을 떠올리며 그저 지나가는 유행일 뿐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마치 특정 혈액형은 성격이 나쁘다는 식으로 설명하던 혈액형 성격론과 달리 그저 자기가 선택한 답변에 따라 성격의 특징만 묘사해주는 무난한 방식이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부분도 있다. 이렇듯 과몰입하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상당히 장점이 많은 툴(tool)이기 때문에 열풍이 지속되는 것이다.

트렌드·세대 연구자로서 필자가 지닌 하나의 습관은 어떤 FAD(일시적 유행)가 나타나거나 하나의 트렌드가 세팅됐을 때 그 원인을 추적해보는 것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세분화된 집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든,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세대 간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든 모든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맞다. 필자는 역시 엔티제(ENTJ)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우리가 싸우는 이유: MZ세대는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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