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3일의 휴가, 사랑은 낙엽을 타고, 언더 유어 베드, 번스타인을 하루에 봤더니

신정선 기자 2023. 12. 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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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9번째 레터12월 개봉작 4편을 짧고 굵게 한꺼번에 보내드려봅니다. 제가 오늘(6일) 4편을 쭈욱 이어 봤거든요. 못다 쓴 의무휴가가 있어 하루 통째로 용산CGV에서 영화 보며 휴가를 즐겼(?)습니다. 오늘의 관람 리스트는,

07:50 ‘3일의 휴가'/일반 관람/오늘 개봉

10:30 ‘사랑은 낙엽을 타고'/시사회/20일 개봉

14:00 ‘언더 유어 베드'/시사회/13일 개봉

17:20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일반 관람/오늘 개봉

이렇게 4편입니다. 전 어떤 영화라도 평론가들의 평가와 무관하게 관객 각자 가져가는 장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영화가 명작인지 망작인지하고는 상관없이요. 아주 별로인 영화라도 적어도 하나 정도는 마음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기 마련이죠.(물론 예외도 있죠.) 위의 4편을 볼까말까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제 생각에 그런 부분이겠다 싶은 장면까지 하나씩 집어서 보내드려요. 자, 그럼 가보실까요.

영화 '3일의 휴가'. 감독 육상효, 각본 유영아, 출연 김해숙, 신민아 등. 개봉 12월6일

자, 오늘 관람 1타자였던 영화 ‘3일의 휴가'입니다. 개봉날 조조, 게다가 평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넓은 영화관에 관객은 저 포함 3명이었습니다.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엄마가 영혼이 돼 딸을 찾아오는 얘깁니다. 그 딸은 엄마가 식모하면서 어렵게 키웠습니다. 엄마가 생계 때문에 딸을 남동생에게 맡겼고, 후에 딸은 미국 수학과 교수가 됐는데 원망 때문인지(”날 왜 버렸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엄마와 연락을 거의 끊다시피하고요. 그러다 엄마가 죽자 너무나 절망해 교수도 거의 그만두고 엄마가 살던 시골로 내려가 밥집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기본 설정만 들어도 아시겠지만, 판타지입니다. 엄마의 영혼이 딸을 찾아와서 판타지가 아니라, 엄마와 딸의 캐릭터부터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에요. 시골에 꾸며놓은 밥집 역시 판타지 세계에서나 가능한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반짝반짝 윤나는 식당이고요. 환상의 공간에서 음식 만들기를 예쁘게 보여주는 영화는 전에도 많았죠. 이 영화는 판타지+엄마라는 최루가스를 듬뿍 친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죽은 엄마로 울리고, 엄마의 희생으로 울리는 영화인데(각본가 분이 ‘7번방의 선물'도 쓰셨네요), 아이고, 엄마, 흑흑, 아이고, 엄마의 밥, 흑흑, 이런 감정선을 따라가실 수 있는 분에게(만) 적당한 영화입니다. 영화 홍보 쪽에서도 ‘A가 보고 울었다' ‘B도 같이 울었다' ‘C도 따라 울었다' 이렇게 알려오고 있네요.

‘그래도 이 장면은'

네,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맥도날드 장면이 그랬어요. 주인공이 맥도날드를 싫어하는 걸로 나와요. KFC도 아니고 웬디스도 아니고 맥도날드. 왜냐면 엄마와 가슴 아픈 추억이 있거든요.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난 괜찮아, 그러니까 너 밥 챙겨먹어'라고 문자를 보내는 심정.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그 비슷한 문자를 보내보신 분이라면 이 장면에서 녹아내리는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을 보며 눈이 아릴 수 있습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츨연 알마 포이스티, 주시 바티넨 등. 20일 개봉.

2번째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핀란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입니다. 여성 캐릭터는 매우 호감이 가는데(그 씩씩함,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 없는 담담함, 끝끝내 보여주는 의연함. 멋있습니다) 술꾼인 남성 캐릭터가 도무지 정이 가는 구석이 없더군요. 이건 제가 술꾼을 워낙, 정말, 매우 싫어해서 평균 이상의 반감을 가진 것일 수 있으니 감안해주시고요.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마시고, 일하다 마시고, 돌아서서 마시고, 자기 전에 또 마시는 걸로 나옵니다. 으으.) 감독이 집어넣은 반전 메시지도 의도가 너무 드러나서 겉도는 거 같았어요. 해외의 일부 극찬은 다소 과장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슈퍼마켓 직원과 막노동 일꾼의 만남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건 귀한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엔 참 여러 사랑이.

‘역시 이 장면은’

주인공 여성이 퇴원하는 남성을 멍멍이랑 같이 기다리는 장면. 내내 하늘색 코트를 입고 나오다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네이비 코트로 갈아입었는데 참 잘 어울려요. 사랑으로 빛나는 그녀에겐 그 어떤 색도 환하기만 하더라.

영화 '언더 유어 베드'. 감독 사부, 출연 이지훈, 이윤우 등. 13일 개봉.

3번째 영화는 시사회로 본 ‘언더 유어 베드'입니다. 강력히 비추합니다. 시사회 중간에 나가는 분들 봤는데 이해합니다. 제 자리 옆옆분은 코를 골며 조시는 것 같았는데, 이 역시 이해합니다. 이 영화에서 내세우는 홍보 문구가 ‘폭력성, 선정성으로 무장한 하드보일드 X급 멜로'입니다. 그 폭력이라는 것이, 여성이나 어린이를 마구잡이로 학대하는 모습을 구체적이고 길게 전시하는 장면입니다. 게다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매우 불쾌했습니다. 여성 주인공은 영화 내내 온몸이 멍들어 있고 그걸 또 자주 보여줘요. 맥락이 있는 게 아니에요. 폭력 자체가 이 영화의 주연이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선정성이요. 살색으로 도배한다고 다 야해보이나요. 배우들이 애쓴 것은 알겠으나 두 남녀가 엉켜 살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이 반복될 뿐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아, 불쾌하다는 느낌은 주더군요. 영화에서 폭력이나 선정성이 작품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고 근거와 맥락, 의미를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영화가 아주 잘 보여줍니다. 작정하고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으나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

‘그래도 이 장면은’

없습니다. 예외가 잘 안 나오는데 오늘 하필.

영화 '마에스트로'. 감독 브래들리 쿠퍼, 출연 브래들리 쿠퍼, 캐리 멀리건 등

4번째 영화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입니다. 원제는 그냥 ‘마에스트로’죠. 미국에선 마에스트로하면 레너드 번스타인, 아니 애칭으로 레니 번스타인으로 통하니까 저 제목이 가능할 거에요. 한국에선 누구다? 카라얀이죠. 90년대엔 카페에 가도, 떡볶이집에 가도, 꽃집에 가도 저 유명한 카라얀의 지휘 장면이 걸려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국내에선 카라얀보다 훨씬 덜 유명했죠. 이 영화에서 그를 좀 더 알게 되려나 했으나 아니었습니다. 네, 이 영화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 세계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실망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정확하게 말하면 레너드 번스타인이 아니라 번스타인 부부의 관계가 중점입니다. (그런데 번스타인 부인에 대해 관심있는 국내 팬이 과연 얼마나 될 지) 번스타인이 어떤 음악가였는지는 대사 몇 마디로 치고 지나갈 뿐, 주로 아내와의 관계, 특히, 번스타인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그가 게이였다는 점이 아내와 갈등의 주요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겠죠. 아내가 죽은 뒤에도 남성과 즐기는 장면을 굳이 또 보여주며 그의 성정체성을 강조하더군요. 하고 많은 번스타인의 인간적 측면 중에서 꼭 저거 하나를 저렇게 두드러지게 했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것보단 훨씬 다면적인 인물인데요.

음악 세계가 거의 다뤄지지 않아서, 꼭 영화관에서 좋은 사운드로 듣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넷플릭스에 뜨면 보셔도 되지 않을까 해요. 브래들리 쿠퍼가 내년 아카데미상을 노리고 있는데 글쎄요. 후보까지는 모르겠으나 수상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 장면은’

후반부에 저 유명한 ‘일리 대성당 연주회'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가 영국 일리 대성당에서 말러 교향곡 2번 5악장 피날레 연주하는 모습인데요,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번스타인의 지휘를 보여줘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브래들리 쿠퍼가 정말 혼신의 힘으로 연기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에요. 만약 브래들리 쿠퍼가 소원대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가면 이 장면 덕분일 것 같습니다. 박수쳐주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4편을 두서없이 썼네요. 내일 아침에 열어보면 오탈자와 맘에 들지 않는 문장이 가득할 거 같습니다. 오늘 오전 7시30분에 용산CGV 들어섰는데 지금 오후 9시30분이네요. 휴가날을 영화와 함께, 레터 독자분과 함께 보냈네요. 독자 여러분 감사해요~ 들어가서 말러 교향곡 2번 5악장이나 다시 들어보렵니다. 다음 레터로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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