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신산업정책 시대와 도전

기자 2023. 12. 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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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정책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일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친환경차 세액공제 조항 중 해외우려기관(FEOC, Foreign Entity of Concern)에 대한 세부규정을 발표했다. FEOC로 분류되면 IRA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미 에너지부는 해외기관, 해외정부, 법률적 관할권, 소유·통제·지시의 4가지 기준을 통해 FEOC를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기준은 ‘25% 지분율’과 ‘실효적 통제권 행사 여부’이다. 해외우려국(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 4개국) 정부가 이사회 의석, 의결권, 지분의 25% 이상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유하는 기업은 이들 정부로부터 소유·통제·지시를 받는 것으로 해석되어 FEOC에 해당된다. 이때 해외정부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관련 기관 및 기구뿐 아니라 지배정당이나 전직 및 현직 고위 정치인도 포함된다. 또한 이들이 라이선스계약 및 기타 계약을 통해 핵심광물, 배터리부품 또는 구성물질의 추출, 처리, 재활용, 제조 또는 조립에 대한 실효적 통제권을 가진 경우에도 소유·통제·지시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중국에 위치하거나 중국에 법인을 등록한 대부분 기업에서 채굴, 가공, 제조, 조립한 배터리 셀과 핵심소재를 조달하는 경우 IRA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며, 중국 밖에서 설립된 중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합작사라고 하더라도 중국 기업의 지분율이 25% 이상이면 보조금 혜택이 불가하다. FEOC 세부규정의 25% 지분율 기준은 반도체지원법(CHIPS)과 동일한 요건이며, 배터리를 반도체와 같은 핵심안보품목으로 보고 중국의 공급망 배제를 추진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재확인된 셈이다.

그동안 IRA 규제에 의해 미국 수출이 사실상 막힌 중국 기업들이 우회로를 찾기 위해 한국 기업과의 합작사 설립을 크게 늘렸으며, 국내 기업들 또한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위해 중국 기업과 협력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합작법인, 공동투자, MOU 등의 형태로 양국 기업 간 배터리 분야 공동프로젝트는 20여개에 이른다. 대부분의 경우 중국 기업들의 절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 수출이 주요 목적인 사업들은 중국 기업들의 지분율을 25% 이하로 조정해야 하며, 초과하는 지분을 국내 기업들이 인수해야 한다. 주요 프로젝트의 건당 투자금액이 조 단위로 계획된 점을 고려하면 초과지분 확보에만 수조원이 필요하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이 사례는 미국의 신산업정책(New Industrial Policy)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30년 소위 ‘시장의 시대’를 이끌었던 세계화 내지 글로벌가치사슬(GVC)은 이제 본격적으로 진영논리가 우선시되는 신뢰가치사슬(TVC)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신뢰가치사슬은 그 내부에서도 항상 투명하거나 상호호혜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근저에는 자국 우선주의와 분리주의의 흐름과 지향이 전제되어 있다. 신뢰가치사슬에 기초한 공급망 재편이 가격과 효율성에 기반한 교역 내지 분업구조와 달라지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디지털전환과 녹색전환을 모토로 산업정책의 부활을 공식화한 유럽의 신산업전략이나 GVC 재편 과정에서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세안의 역내 통합을 위한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25 등도 모두 신산업정책을 통해 지경학 시대에 대응하는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지경학적 갈등과 신뢰가치사슬, 각국의 신산업정책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선 이번 사례가 보여주듯이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동맹 내지 신뢰가치사슬에 기반한 국제분업질서에 올인하는 전략 또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결국 우리는 다자주의 원칙과 국제협력의 틀 속에서 국제규범의 재확립을 위한 역할을 확대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찾아야 할 터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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