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문뜩] 이상한 총선용 개각

이호준 기자 2023. 12. 6. 2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개 석상에서 ‘암컷’을 운운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충돌이 한동안 세간의 화제였다. 급기야 ‘이게 민주주의다, 바보야(It is democracy, stupid)’라는 최 전 의원의 SNS 글에 한 장관이 ‘이게 민주당이다’로 맞받아치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코미디 같은 한국의 정치 현실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실소를 참아내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이런 난장판 속에서 그래도 한 가지 건질 미덕이 있다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2023년 대한민국에 다시 불러냈다는 정도가 될 것 같다.

‘문제는 경제야’는 1992년 빌 클린턴 미국 민주당 후보가 현직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맞서 대선에 나서면서 내놓은 메시지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거 캠페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메시지는,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고공비행을 하던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클린턴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1990년대를 통째로 놓고 보면 미국의 경제는 호조였다. 하지만 1992년 대선을 앞둔 1990년대 초반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애초부터 1980년대 후반 긴축통화의 영향으로 경기가 위축된 상황이었는데, 걸프전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물가도 요동쳤다.

여기에 미국판 저축은행 사태인 ‘S&L(저축대부조합)’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신용경색까지 발생했다. 자동차가 팔리지 않았고, 주택 수요도 급감했다. 돈이 돌지 않으면서 민간 부채는 증가하고, 중앙과 지방 할 것 없이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맸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속적으로 경기 후퇴 가능성의 경고음을 울렸지만 실제 통화 공급 확대는 경기 침체기에 들어서서야 실시됐다. 이 가운데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며 도입된 ‘예산강화법(the Budget Enforcement Act)’은 정부의 손발을 묶으며 경기진작을 위한 수단마저 봉쇄했다.

클린턴은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전쟁 영웅 부시는 연임에 실패한 무능한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물론 당시 클린턴의 승리가 이 캠페인 하나로 결정됐다고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강력한 제3 후보의 등장과 증세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이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데는 민생과 경제가 선거에서 얼마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2년 미국의 경제상황이 2023년 한국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가운데 한국에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의회 권력을 결정짓는 총선인 데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치러지는 마지막 전국 단위 선거이다. 거대 양당만 놓고 보면 한쪽은 죽는 사실상의 멸망전이 임박한 셈이다.

먼저 카드를 꺼내든 곳은 정부·여당이었다. 혁신위원회라는 것을 꾸리고, 개각도 단행했다. 그런데 이 개각의 모습이 묘하다. 정부에서는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이번 개각이 총선용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6개 부처의 장관이 교체됐는데 물러나는 6명 모두 총선에 출마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더 의아한 것은 정부·여당의 의중이다. 총선용이라면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개각을 말하는 것일 텐데, 한창 일하던 장차관들이 줄줄이 선거에 나간다. 심지어 떠나는 장관들의 부처들을 보면 기획재정, 국토교통,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 중기벤처처럼 대부분 민생과 매우 밀접한 곳들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식주를 담당하는 장관들이 총선을 넉 달여 남기고 일거에 자리를 비우고, 다른 이들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정부가 새로운 비전을 담은 심기일전이나 국정쇄신을 기치로 개각을 단행하는 것이라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당장 몇몇 인물로 선거에서 보탬을 얻으려 하는 것 같아 보여 ‘참 곤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가는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실질소득은 한참 뒷걸음치다 이제야 겨우 제자리걸음을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몇달째 후퇴하고 있다.

그래서 ‘회복은 시작했지만 온기가 퍼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정부 설명이 합리적인지와는 별개로 흉흉한 민심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내놓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를 보면, 부정평가 이유로 ‘경제·민생·물가’를 꼽은 응답이 21%로 다른 이유들을 압도했다.

당장 미국만 해도 내년 성장률과 소비자물가의 향방이 내년 바이든과 트럼프 간 리매치의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가 문제’라는 진단과 경고를 무시하고 1기 같은, 2기 내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바보야’일 수밖에 없다.

이호준 경제부 차장

이호준 경제부 차장 hj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