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와 국회의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기후재난’
2023년, 기후재난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핵심은 산사태이나, 이 재난을 ‘기후재난’으로 볼 것인가는 분명 깊이 따져볼 일이다. 산림청은 올해 7월26일까지 발생한 산사태 890건 중 임도발 산사태가 316건으로 35.5%라 했고, 나머지 64.5%가 다른 곳에서 발생했기에 모든 임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 주장했다.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가? 임도는 산림면적의 0.1% 남짓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0.1%에서 발생한 산사태가 35.5%나 된다. 나머지 99.9%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비교하여 무려 350배 이상이나 많이 발생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임도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실제 올해 인명피해를 일으킨 산사태 중에서 임도가 산사태 시발점으로 판단되는 곳이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산림청은 모든 산사태의 원인을 ‘폭우와 연약지반’이라 제시한 바 있다. 정밀조사를 한 것도 아니다.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아니고, 어떻게 임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가 의아할 뿐이다. 조사는 전임 산림청장이 협회장으로 재취업한 산림청 산하 특수법인이 진행했다. 산림청장이 산하기관에 재취업한 것 자체가 공정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추후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초기조사 보고서에는 산림청과는 반대로 임도에 의한 영향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더욱 의심스럽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다. 산림청은 모든 산사태 위치정보를 확인한 후에야 알 수 있는 정보를 언론에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정감사에서 산사태 위치정보를 제출하라는 한 의원에게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자료가 없는데 어떻게 316건이 임도에서 발생했는지 확인했을까? 없다는 정보는 이후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국정감사장에서 여당의 한 의원이 경북 예천의 모든 산사태 위치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자료는 임도문제를 제기한 참고인 주장을 부정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여당 의원은 산사태 주관기관인 산림청에도 없는 자료를 어떻게 확보했을까? 자체적으로 산사태 위치를 조사했다는 결론인데, 가능하지 않은 추론이다. 산림청이 산사태 위치정보자료를 구축했음에도 ‘자료 없음’으로 답변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산림청은 임도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임도밀도와 비교해 왔는데, 이 비교가 왜곡임이 밝혀졌다. 오스트리아의 ‘200㏊ 이상 산림을 소유한 대기업의 도로밀도’를 오스트리아 임도밀도라 왜곡한 것이다. 산림청은 사유도로나 공공도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자료(10월18일자)까지 배포했으나, 정작 오스트리아 정부 홈페이지에는 임도가 사유도로와 마을도로, 공공도로(국도나 지방도)로 구성됨이 명시돼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공공도로와 농로까지 포함한다. 이런데도 아직 이 왜곡 정보는 산림청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시되어 있다. 의도적 왜곡자료를 바탕으로 산림청은 임도의 확대를 주장했고 2024년 임도예산을 20% 가까이 대폭 증대시켰다. 밀도 비교의 왜곡과 산사태 조사의 부실에 많은 국민이 예산 문제를 제기하자 이번에는 한 야당 의원이 나섰다. 예산심사 중 임도예산 확대를 산림청보다 더 강력하게 주장하며 원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제시해야 할 정부와 이를 검증한 후 예산의 적정성을 판단해야 할 국회의원 모두 제 할 일을 망각한 채, 자기 부처, 자기 지역구 예산증액만을 위해 온 힘을 쏟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똘똘 뭉쳤다. 산림청은 왜곡된 자료를, 의원들은 팩트체크 결과조차 무시했다.
미국이 이미 20여년 전부터 매년 임도를 수천킬로미터씩 폐쇄하고 복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사태는 기후재난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이런 짬짜미 예산으로 증가한다. 카르텔에 의한 예산 확대는 고스란히 재앙으로 돌아온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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