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동생 키워내고 사시 패스한 소년가장…BBK 수사한 특수통

우제윤 기자(jywoo@mk.co.kr), 김대기 기자(daekey1@mk.co.kr) 2023. 12. 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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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1956년 충남 예산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이 됐다.

1986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해 2013년 부산고검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28년을 검찰에서 일했다.

이명박 정권때인 2009년에는 중앙지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검찰 빅4'로 불리는 대검 중수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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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출신 첫 사법시험 합격자
28년 檢 근무 ‘강력·특수통’ 명성
이명박 도곡동 땅∙BBK 수사지휘
저축銀 수사 등 굵직한 사건 처리

◆ 새 방통위원장 지명 ◆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이승환 기자]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1956년 충남 예산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이 됐다. 예산고를 졸업했으나 생계를 책임지느라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3년 뒤인 1975년에야 전액 장학생으로 충남대 법대에 늦깎이 입학했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서 충남대 출신 첫 합격자로 화제를 모았고 1985년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세 동생을 제가 맡게 됐을 때 동지섣달 대밭을 울리며 불어대는 찬바람을 견디며 살았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한 적이 있다.

1986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해 2013년 부산고검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28년을 검찰에서 일했다. 서울지검 특수1부 부부장검사, 춘천지청 원주지청장, 서울고검, 수원지검 부장검사 등을 두루 거치며 ‘강력·특수통’으로 명성을 날렸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인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 보유와 BBK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이명박 정권때인 2009년에는 중앙지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검찰 빅4’로 불리는 대검 중수부장이 됐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맡아 윤석열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기도 했다.

이밖에도 박한상 씨 존속 살해, 지존파 납치·살해 사건, 영생교 신도 암매장 사건,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제이유 그룹 로비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강력사건 현장수사론’이라는 책도 썼다.

2013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활동했다.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7월부터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됐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후임으로 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해오다가 5개월만에 방통위원장으로 지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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