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로 참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장병호 2023. 12.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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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오른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9·11 테러 당시 캐나다 작은 마을 실화 바탕
불시착한 승객 위해 아낌없이 나눈 휴머니즘
1인 다역 소화하는 배우들의 빛나는 앙상블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001년 9월 11일. 이날 항공기 두 대는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를 향해 돌진했다. 비슷한 시각 다른 한 대는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을 향했다. 백악관 또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한 대는 승객들이 테러범을 저지하면서 중간에 추락했다. 3000명이 넘는 사망자에 최대 2만 5000여 명이 부상을 당한 세계 최악의 테러 ‘9·11 테러’ 이야기다.

인종·언어·취향 모두 다른 이들의 끈끈한 유대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의 한 장면. (사진=쇼노트)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국내 초연으로 개막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참사의 비극 속에서 빛난 휴머니즘을 조명한 작품이다. 9·11 테러 당시 캐나다의 작은 시골 마을 갠더에서 있었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 캐나다 출신 아이린 산코프, 데이비드 헤인이 대본을 쓰고 작사·작곡한 작품으로 2017년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이다.

배경은 9·11 테러 당시 캐나다가 실시한 민항기 유도 작전 ‘노란 리본 작전’이다. 캐나다는 테러로 인해 미국 영공이 봉쇄되자 미국으로 향하던 여객과 화물 비행편을 가까운 공항으로 유도했다. 이 작전으로 주민이 1만여 명에 불과한 마을 갠더에는 승객과 승무원 6579명을 태운 비행기 수십 대가 불시착했다.

비극에서 파생된 이야기이지만 ‘컴 프롬 어웨이’는 마냥 슬프지 않다. 배우들의 앙상블로 빚어내는 첫 넘버 ‘웰컴 투 더 락’(Welcome to the Rock)부터 어깨춤이 날 정도로 흥겹다. 이러한 밝은 분위기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음악의 힘이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켈트 문화권을 대표하는 ‘켈트 음악’을 활용한 작품에는 만돌린, 바우런, 휘슬, 피들 등과 같은 켈트 악기들이 쓰이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켰다.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의 한 장면. (사진=쇼노트)
‘컴 프롬 어웨이’의 가장 큰 볼거리는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이다. 총 24명 배우가 더블 캐스팅으로 무대에 오른다. 매회 12명의 배우들이 출연해 갠더 주민과 불시착한 승객·승무원 등 100명에 가까운 인물을 연기한다. 의상과 모자 등 작은 변화만으로 여러 캐릭터로 자유롭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경주, 최정원, 신영숙, 차지연 등 뮤지컬계 대표 배우들과 홍서영, 나하나, 김찬종, 현석준 등 젊은 배우들의 조화도 다른 뮤지컬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인종과 언어, 취향, 성격, 고향 등 모든 것이 각기 다른 사람들은 갠더라는 작은 마을에서 6일간 함께 보내며 끈끈한 유대감을 쌓아간다. 이방인에게 음식, 숙소 등을 아낌없이 내주는 갠더 주민과 서서히 경계심을 푸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뭉클하다. 동성애자, 채식주의자, 동물주의자 등을 통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메시지도 엿보인다. 이를 강요하지 않고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은 ‘컴 프롬 어웨이’의 또 다른 미덕이다.

사회적 메시지 담아 소통 창구로써 가능성 제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의 한 장면. (사진=쇼노트)
‘컴 프롬 어웨이’는 뮤지컬하면 기대하는 신나는 ‘쇼’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그러나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대중과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예술 장르임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다. 휴머니즘의 힘으로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은 극 후반부에 참사가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슬며시 꺼내 보인다. 소방관 아들이 있다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진 갠더 주민 뷸라와 뉴욕 시민 한나의 마지막 대화를 통해서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이 장면은 우리가 왜 참사를 기억해야만 하는지 보여준다. 참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사람과 사람 사이 연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연제작사 쇼노트의 송한샘 프로듀서는 최근 열린 언론시연회에서 “‘컴 프롬 어웨이’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통한 공동체가 얼마나 세상을 많이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일선에서 노력하는 의료인을 보며 뭉클했던 것과 같은 감동”이라고 공연의 의미를 설명했다.

공연을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참사가 끊이지 않는 한국에서도 ‘컴 프롬 어웨이’처럼 모두를 위로할 수 있는 창작뮤지컬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공연은 내년 2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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