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로 풀어낸 노화의 비밀 … 줄기세포 연구로 해법 찾아낼 것"
총장·회장직 모두 내려놓고
오직 연구소장 업무에 전념
국내 제약 합성의약품 산업
세계평균에 80년 뒤지지만
줄기세포 분야는 늦지않아
폐경·치매·파킨슨병 치료제등
확실한 결과물 곧 내놓을것
◆ 매경이 만난 사람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난자' 연구에 몰두한 차광렬 차병원·바이오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의 이야기다.
"난자가 젊어질 수 있듯 다른 장기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티에이징입니다. 어렵지만 노력하면 반드시 풀 수 있는 이 문제는 줄기세포 연구에 달려 있습니다."
한때 차병원·바이오그룹 회장이었던 그가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이란 직위만은 유지하는 이유는 직접 이 문제의 해법을 찾고 싶어서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암, 치매 등의 질환은 사람이 늙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며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노화 정복의 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차 소장은 수십 년간 매달려온 '난자 연구'에서 노화의 열쇠를 찾았다. 그는 1989년 미성숙 난자의 임신과 출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1998년에는 유리화 난자동결법(난자 급속냉동 방식)을 개발해 이듬해 난자은행을 설립했다. 세 가지 성과 모두 세계 최초다. 차 소장은 "사람 나이 51세에 완전히 소멸해버리는 세포는 난자뿐"이라며 "우리 몸에서 가장 빨리 늙는 세포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화 관련 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최정예 연구원 20여 명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여 회의하고 매년 열리는 미국난임학회, 기초·임상줄기세포학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세포 치료제의 결실을 맺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99년 차 소장이 난자은행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난자은행이 난임 치료에 쓰이게 될 것이라는 데에 학자들조차 회의적이었다. 그는 "이미 20여 년 전에 많은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나중에 낳을 것으로 예상해 난자은행을 설립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2014년 미국 하와이 생식의학회에서 난자은행의 효용성을 알린 이후 난자은행 설립이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더 예측하자면 앞으로 난자은행은 노화로 인한 질병을 고치는 데, 특히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적극 활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줄기세포 치료제의 효능은 쥐 실험으로 이미 증명됐다. 앞서 차병원은 2018년 동물 임상을 통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약해진 난소 기능을 원래대로 회복시켜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한 논문은 현재까지 6개 이상 발표됐다. 차 소장은 "쥐도 나이가 들면 털이 푸석해지는데 줄기세포를 활용해 실험해보니 털이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간 것은 물론 새끼도 낳을 수 있게 됐다"며 "동물에게서 그 효과를 확인했기에 사람도 가능할 것이라 확신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 실험이 인간에게도 통할 것이란 믿음은 과거 클로닝(복제)에 성공한 경험이 뒷받침한다. 차병원은 2014년 세계 최초로 살아 있는 성인의 체세포에 난자를 결합해 복제 줄기세포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약 10년 전 황우석 박사팀의 실패로 가설에만 머물렀던 연구를 끝내 현실화한 것이다. 차 소장은 "이론 자체가 타당했고 동물에게서 이미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밀어붙였다"며 "기술 개발에 지난한 시간이 소요됐지만 결국 해냈다는 데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재 차병원은 차 소장의 지휘하에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활용한 망막변성 치료제, 태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제대혈에서 유래한 뇌성마비 치료제, 자가 자연살해(NK)세포를 활용한 교모세포종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차 소장은 "세포는 여러 작용과 기전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물질로, 50억년의 진화를 거듭해온 인공지능(AI)이나 다름없다"며 "세포 치료제에 대한 접근을 생명이 없는 합성의약품과 동일하게 가져가선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일례로 승산 있는 치매 치료제가 나오지 못하는 건 전체 노화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어느 특정 부분에만 집중해 연구하기 때문"이라며 "코끼리 다리가 4개 있는데 하나만 살펴보면 그 실체를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개발(R&D)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화에 대한 포괄적 R&D가 필요한 시점에서 차 소장이 강조한 선결 조건은 산·학·연·병의 연대다. 기초과학과 임상이 함께 뒷받침돼야 세포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성과도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병원·바이오그룹은 기초연구 중심의 차의과학대와 신약 발굴을 맡은 차종합연구원, 임상을 책임지는 차병원, 치료제 상업화의 핵심인 차바이오텍 등 유기적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분명하다.
차 소장은 "합성의약품의 경우 국내 제약 산업은 글로벌 평균 수준보다 60~100년 뒤처져 있지만 줄기세포 분야에서만큼은 늦지 않았다고 자부한다"며 "여성의 폐경을 늦추는 치료제 등 확실한 효과를 지닌 결과물을 시장에 곧 내놓겠다"고 말했다.
차광렬 차병원 연구소장
△1952년 서울 출생 △1977년 연세대 의대 최우등 졸업 △1983년 연세대 의학대학원 졸업(의학 석사) △1988년 세계 최초로 폐기되는 난소에서 채취한 미성숙 난자로 체외배양 임신 성공
△1988년 국내 최초 복강경 수술 시행 △1998년 세계 최초 유리화 난자동결 보존법 개발 △1999년 뉴욕 차 컬럼비아 난임센터 개설 △1999년 세계 최초 난자은행 설립 △1984년~ 차병원·차의과학대·미국 LA차병원·호주 난임센터(City Fertility)·차바이오텍·차백신연구소 등 설립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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