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망명·감옥행…홍콩 민주화 운동 젊은 주역들의 달라진 삶
아그네스 차우(周庭·27)는 2011년 15세의 나이로 동갑내기인 조슈아 웡(黃之鋒)과 함께 ‘학민사조(學民思潮)’라는 학생단체를 결성했다. 학민사조는 이듬해 홍콩 정부가 친중국적 내용의 국민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하자 대규모 반대 운동을 주도해 도입 계획을 철회시켰다. 2014년 홍콩에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인 ‘우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두 사람은 그 중심에 있었다.
차우와 웡은 2016년에는 함께 우산 혁명을 이끌었던 네이선 로(羅冠聰·30)와 데모시스토당을 결성해 현실 정치에도 뛰어 들었다. 이들은 2019년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2020년 중국이 강제 시행한 국가보안법에 의해 달라졌다. 2019년 시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2021년 6월 석방된 차우는 최근 캐나다로 건너가 사실상 망명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이달 말 홍콩에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홍콩의 상황과 나의 안전, 정신적·육체적 건강 등을 고려해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차우를 석방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정기적으로 경찰에 출두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그가 홍콩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홍콩 보안당국은 그의 행동이 공개적으로 법치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지난 5일에는 존 리(李家超) 행정장관이 직접 나서 보석 중 차우가 캐나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선처’를 베풀었다 기만당했다고 분노하며 그를 “평생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우의 망명 선언은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젊은 주역들을 재조명하게 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 차우의 이름이 거론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인 조슈아 웡 등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젊은 세대 지도자들의 근황을 전했다.
웡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홍콩 민주화 운동을 대표했던 청년 운동가다. 그는 현재 복역 상태에서 다른 민주화 운동가 및 야권 인사 40여명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 웡은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직후 자신에 대한 체포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나는 아직 여기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며 홍콩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네이선 로는 현재 영국에 머물며 홍콩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로는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현재 홍콩 경찰이 1인당 100만홍콩달러(약 1억6800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추적 중인 ‘해외 도피’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다. 그의 망명 후 홍콩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로는 그런 상황을 염려해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가 영국으로 망명했을 때 웡은 “그의 결정을 이해하며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그는 홍콩을 위해 싸우려 떠난 것이며 우리는 국제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홍콩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나 국가보안법 시행 후 엇갈린 길을 가게 된 또 다른 이가 있다. 홍콩 독립 성향이 강한 본토민주전선의 대변인을 지낸 에드워드 렁(梁天琦·32)이다. 렁은 2016년 노점상 단속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몽콕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폭동죄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때 홍콩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구호로 사용된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만든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렁은 지난해 1월 모범수로 조기 석방된 뒤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석방 당시 “당국의 명령을 준수해 스포트라이트를 피하고 SNS 사용을 중단하며 언론의 방문과 인터뷰를 거절하겠다”고 밝힌 뒤 페이스북 계정도 삭제해 버렸다. 한때 홍콩에서 동시대를 살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의 엇갈린 삶의 궤적은 국가보안법 시행 후 달라진 홍콩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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