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똥이 약’ 되는 시대 왔다…국내 최대 대변은행 가보니

이종현 기자 2023. 12. 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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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분당 바이오 벤처기업 바이오뱅크힐링 연구실
건강한 사람 대변 이식받아 장 질환 환자에게 이식
디피실균 감염증 90% 완치 효과…다른 질환으로 확대
해외에선 먹는 약...바이오뱅크힐링도 임상 준비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다. 평소에 무척 흔하던 것도 막상 필요할 땐 없는 상황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더는 비유가 아닌 시대가 됐다. 진짜 똥이 약이 되는 시대가 왔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헬스케어혁신파크에는 국내 최대의 ‘대변은행’이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인 이동호 교수가 2016년 설립한 바이오 벤처기업인 바이오뱅크힐링이다.

바이오뱅크힐링 분당 연구실에 보관 중인 FMT 이식액.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기증받아 만든 FMT 이식액을 장질환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진다. 디피실균 감염증은 완치율이 90%에 이른다./이종현 기자

지난 1일 오후 방문한 회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은행’이라는 용어를 써서 커다란 금고를 떠올렸지만 상상은 빗나갔다. 이곳에서 실제 은행과 금고 역할을 하는 공간은 대변에서 추출한 ‘미생물(FMT) 이식액’을 영하 80도 온도에서 꽁꽁 얼려 보관하는 냉장고 3개이다. 냉동고 문을 열자 냉기와 서리 사이로 FMT 이식액을 담은 250ml 용기들이 빼곡히 보였다. 작은 주스병 크기에 불과했지만, 가격은 듣는 귀를 의심하게 했다.

시설을 안내한 이원석 바이오뱅크힐링 이사는 “FMT 이식액이 담긴 250ml 용기 하나의 가격이 80만원 정도”라며 “현재 회사에서 보관 중인 이식액은 모두 400개 정도로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20대 운동선수의 건강한 대변 이식하자 완치율 90%

과학자들은 도대체 대변이 어떻게 약이 된다고 말하는 걸까.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2013년 10대 과학 뉴스를 선정하면서 우리 몸 안의 장내세균이 암이나 당뇨, 비만 같은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를 꼽았다. 장 질환부터 시작해 비만이나 신경질환, 심지어 치료제가 없는 자폐증도 장내세균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이어졌다.

이런 연구 성과들을 반대로 해석하면 장내 세균의 불균형을 해소하면 그만큼 많은 질병을 고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과학계와 의학계는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환자에게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고, 실제로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치명적인 설사병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감염증(CDI)’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CDI는 항생제를 잘못 처방했을 때 생기는 병이다. 항생제가 몸 안에 들어오면 장내 유익한 세균이 죽고 디피실균 같은 나쁜 세균이 증식해 극심한 설사를 유발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50만명이 걸리는 병인데, 이 가운데 3만명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설사병이다. 항생제 치료가 아예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그런데 CDI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80~90%가 완치됐다.

바이오뱅크힐링은 국내에서 CDI 환자 치료를 위해 FMT 이식액을 공급하고 있다. 이 이사는 “국내에서만 CDI 임상을 180명 이상 진행해서 완치율이 미국보다 높은 90% 이상을 기록했다”며 “실제 임상에서 치료제로 효과가 있던 분연에서 균주를 분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변 이식을 이용한 치료는 CDI 같은 장질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캐나다 로슨 보건연구원은 피부암인 흑색종 환자의 치료를 위해 대변 이식을 활용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면역 치료제만 썼을 때보다 대변 이식을 함께 활용하자 치료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의 비율이 높아졌다.

노화나 당뇨, 파킨슨병, 자폐증 같은 질환에도 대변 이식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연세대 연구진은 올해 초 국제 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발표한 논문에서 젊은 쥐의 대변 속 장내 세균을 이식받은 늙은 쥐가 근육, 피부가 젊어진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CDI 치료를 위해 FMT 이식액을 시술하는 의사들도 “장질환 뿐만 아니라 갑자기 주량이 늘었다거나 체력이 좋아졌다고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FMT 이식액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기증받아야 하는데, 기준을 까다롭게 잡고 있다보니 대부분 20~30대의 운동선수들이 기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바이오뱅크힐링도 장기적으로는 과민성 대장증후군(IBS), 염증성 장질환(IBD),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천식 같은 질환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제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먹는 약’ 개발 경쟁…“2024년 임상, 2026년 상장 목표”

올해 4월 미국의 바이오 기업인 세레스 테라퓨틱스(Seres Therapeutics)가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보우스트(Vowst)’의 품목허가를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받았다. 앞서 좌약 방식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있었지만 먹는 방식으로 FDA 승인을 받은 건 보우스트가 처음이다. CDI 치료제인 보우스트는 병원을 방문해서 의사의 시술을 받을 필요 없이 대변 이식을 받는 효과를 낸다.

세레스 테라퓨틱스의 성공에 자극 받은 전 세계 바이오기업들도 FMT 이식액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뱅크힐링도 그 중 하나다. 바이오뱅크힐링은 내년 4분기 중으로 CDI 치료제 임상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 이사는 “국내에서도 매년 CDI 신규 환자가 3만5000명 정도 발생하고 있고, 전 세계로 확대하면 매년 200만명의 환자가 새로 생기고 그 중 25%는 재발한다”며 “국내 시장 규모만 700억원, 세계 시장은 4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뱅크힐링 분당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FMT 이식액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바이오뱅크힐링은 전체 16명의 직원 중 연구개발(R&D) 인력이 13명이고, 이 중 석·박사가 10명에 달한다./바이오뱅크힐링

과민성대장증후군이나 염증성 장질환으로 넓히면 시장 규모는 더 커진다. FMT 기반 치료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바이오뱅크힐링은 2026년쯤 코스닥시장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이 이사는 “이동호 대표를 포함해 4명의 이사진이 모두 현직 의사로 임상과 연구 경험이 풍부한 점이 바이오뱅크힐링의 강점”이라며 “우리 회사의 목적은 좋은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 실제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고자료

Gut and Liver(2020), DOI : https://www.gutnliver.org/journal/view.html?doi=10.5009/gnl20135

Nature Medicin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3-02453-x

Microbiome(2023), DOI: https://doi.org/10.1186/s40168-022-01386-w

Therapeutic Advances in Gastroenterology, DOI : https://doi.org/10.1177/1756283X1560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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