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장 노동자가 시장님 됐어요"…네팔 정치 한류 붐 [취재파일]

정반석 기자 입력 2023. 12. 6. 13:36 수정 2023. 12.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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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전쟁④ 네팔의 한국 노동자 출신 시장 인터뷰


정부가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미숙련 외국인 노동자 수를 올해 12만 명에서 내년 16만 5천 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합계 출산율 0.7명의 인구절벽, 농촌과 공장의 일손부족 때문입니다. 이제 내년이면 국내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으면서, 한국은 아시아 최초의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진입합니다.

이런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가 내국인이 기피하는 공장과 농촌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규모 이주 노동은 우리 사회는 물론, 노동자를 보내는 주변국들의 모습도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손이나 인력 정도로 여겨졌던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한국에 가장 많은 미숙련 노동자를 보낸 네팔에서는 경제, 문화는 물론 정계에서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지난해 네팔 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한국 노동자 출신이 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유명한 네팔 치트완 지역의 한국 노동자 출신 시장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네팔 엘리트가 한국 공장에 일하러 간 이유


치트완 지역 카이라하니시의 카니야 시장은 정치인 집안 출신으로 중학교 교사, 신문 기자 등으로 일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던 지식인입니다. 그는 네팔에 오랜 내전이 이어지자 2001년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5년간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네팔 노동자 중에는 카니야 시장처럼 중산층,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카니야 시장
한국어를 배우려면 시내로 가서 방을 얻어야 합니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중산층 사람들이 준비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대학생입니다.

한국살이가 쉽진 않았습니다. 카니야 시장은 한국 금속공장에서 일하며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지게차에 짐을 싣다가 무거운 파이프를 지탱하던 쇠줄이 끊어지면서 다리를 덮친 건데, 치료만 받았을 뿐 보상까지는 기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거리에서 차별적인 시선을 겪기도 했습니다.
카니야 시장
가게에 들어가면 '너는 일하러 왔는데 이런 비싼 거 살 수 있니?' '너 벙어리네' 이렇게 무시하곤 했어요.

그럼에도 카니야 시장은 안 좋은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점만 가지고 네팔에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일하며 얻은 것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카니야 시장
얼마나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지를, 책임지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한국에서 배워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도로 체계나 지도 이용 등 한국에서 본 것들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고, 한국처럼 산업 단지를 만들어 운영하기 위해서 준비 중입니다.

네팔 지역 개발로 이어진 한국과의 연결고리


이주노동을 고리로 만들어진 네팔과 한국의 인연은 30년을 넘습니다. 한국은 1991년 산업연수생 제도를 만들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1993년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이주 노동자 단체가 바로 '네팔 공동체'입니다. 네팔 노동자들은 1995년 온 몸을 쇠사슬로 묶고 명동성당에 모여 감금노동, 폭행 실태를 알리는 등 이주노동자 인권개선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재한 네팔 공동체 주축이 네팔로 돌아가 귀환 노동자 모임 '아시아포럼'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시장으로 당선된 한국 출신 노동자 6명 중 카니야 시장을 포함한 4명이 이 단체 소속입니다. 카니야 시장은 한국에서의 경험이 정치 활동을 하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합니다.
카니야 시장
지난해 선거에서 한국 귀환 노동자 6명이 시장으로 당선됐고, 다른 나라에서 일하다 온 노동자들의 지자체장 당선이 늘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보고 느끼는 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귀국하면 우리 마을도 이렇게 개발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됐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취재한 카이라하니 시의 다라이 마을에서는 시에서 진행하는 지역개발 사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작은 농촌 마을인 다라이 마을은 소득이 높지 않아 남성 대부분이 외국에 일하러 가고 여성들만 남아 있는데, 이들의 빈곤한 삶을 개선하기 위해 집집마다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홈스테이 사업입니다. 홈스테이 개소식에서 카니야 시장은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다라이 마을을 전주한옥마을 같은 전통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업은 한국과의 인연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카니야 시장이 소속된 아시아포럼 활동가들이 한국의 공익재단인 하나나눔재단의 후원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네팔 청년들이 한국에서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네팔 정계에 진출하고 빈곤한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바로 진짜 한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간외교사절 역할을 하는 이주노동자들


네팔 현지에서 확인한 건 한국의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네팔 거리에서 삼성, LG 같은 한국 기업의 로고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고, 수도 카트만두의 카페에서 BTS 컨셉의 음료수를 팔고 있었습니다. 네팔의 많은 청년들이 한국을 꿈의 나라로 생각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주요 도시에는 한국 귀환 노동자가 차린 음식점들이 많았습니다. 카니야 시장 같은 이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네팔과 한국의 네트워크는 더욱 끈끈해지고 있습니다.
 
카니야 시장
한국에 다녀온 노동자들이 한국 음식점을 차리고, 한국어 학원을 만들고,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삼성, 기아 같은 한국 제품을 사랑하게 됩니다. 결국, 네팔 사회가 한국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는 겁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만 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본국에 돌아가서도 한국 제품을 사용하고 한국 문화를 전파하며 한국의 대외적인 영향력, 소프트파워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머무르는 이주노동자들을 잠시 쓰고 버릴 노동력으로 대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들을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할 존재로 대우하고 교류하며 한국을 매력적인 국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가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관련 기사: ▷ "한국은 기회의 땅"…네팔에 부는 K-열풍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419136]

정반석 기자 jb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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