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깥, 지영의 안부

한겨레21 2023. 12. 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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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좋은 딸'은 아니었다.

"정신질환에 걸려도 잘 살아갈 수 있고요. 성노동자로 살아도 여기 계신 분들처럼 그 삶에 희로애락이 있는 거예요. 이 책은 어떤 편견 없이 지영이란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거기에서 제 모습도 많이 발견했거든요."

"저는 우리 딸 부끄럽지 않게 장례를 치렀어요." 그제야 나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지영을 애도한다.

그러나 지영의 자리는 여전히 세상 바깥, 넌더리 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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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지영은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좋은 딸’은 아니었다. 정신질환을 겪고,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고, 아주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 딸이 만화를 그려 상을 받게 됐고, 어머니가 대신해 무대에 섰다.

지영. 책의 제목이자 저자의 가명이다. 자기 일상을 그려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했고, 그의 사후에 출간됐다. 지영의 어머니가 무대에 선 것은 레드어워드 시상식. 레드어워드는 대항적 예술에 수여하는, 문자 그대로 빨간 상인데 <지영>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했다. <지영>은 분명 독특한 시선을 가진 작품이다.

‘정상(성)’에서 언제든 튕겨나갈 몸

책에서 지영이 보이는 태도는, 그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 좋을 대로 생각해라”.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까닭은 그가 ‘창녀’이기 때문에. 추천사를 쓴 이반지하는 이렇게 말했다. “창녀, 넌더리 날 정도로 비천하고 선정적인 말.” 그러니 당신들 마음대로 생각할 수밖에. 책 속 지영은 “나는 술집여자다”라고 말한다. 아니다. “으하하 하하, 춥다, 나는 술집여자다”라고 한다. 그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고백이 아닌 일상의 혼잣말 같은 지영의 서사가 책을 메운다. 여기까진 독자로서 나의 평. 잘 읽은 책 정도였던 ‘지영’ 두 글자가 깊숙이 들어온 것은 저자의 어머니를 본 뒤였다.

딸을 대신해 상을 받아든 그는 관객석을 둘러보며 물었다. “태어나고 한 달쯤이 기억나세요?” 지영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려나. 아니었다. 돌봄노동자인 그는 자신이 돌보는 장애아동 이야기를 했다. 태어나 의존을 통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많은 이가 인생 끝에 장애를 겪고 의존하는 몸이 된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요.” 무슨 말을 하려나. “제 딸은 19살에 정신질환을 앓았어요.” 여기에 이르러서야 왜 그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장애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게 된다.

“정신질환에 걸려도 잘 살아갈 수 있고요. 성노동자로 살아도 여기 계신 분들처럼 그 삶에 희로애락이 있는 거예요. 이 책은 어떤 편견 없이 지영이란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거기에서 제 모습도 많이 발견했거든요.”

성산업 종사자의 고단함을 예상하고 펼친 책엔 귀여운 그림체의 여자가 떡볶이를 먹고 목욕탕에 간다. 온몸으로 ‘나는 당신들과 다를 게 없어’ 말하는 것 같기도, ‘당신들과 달라도 상관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딸의 세상을 책으로 접해야 했던 어머니는 이해하고 싶었을 거다. 그가 책에서 읽어낸 것은 ‘다르지 않음’이었고, 이를 세상에 납득시키려면 무수히 존재하는 다른 몸들까지도 다르지 않아야 했다. 그리하여 모두가 ‘정상(성)’에서 언제든 튕겨나갈 몸이라고 말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제야 애도가 시작된다

창녀라는 말은, ‘비천하고 선정적’이고, 우리와 저들을 갈라버리니까. 이 사회의 ‘저들’인 딸을 ‘우리’의 자리로 이어 붙이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언어를 곱씹었을까. “저는 우리 딸 부끄럽지 않게 장례를 치렀어요.” 그제야 나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지영을 애도한다.

그러나 지영의 자리는 여전히 세상 바깥, 넌더리 나는 곳이다. 경기도 파주시가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한다고 발표한 이후,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반발이 크다. 생계 대책 등 협의해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2023년 11월22일 파주시가 건물 일부를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화의 주체로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집결지가 사라진 ‘건전한’ 파주에 이들의 자리가 있으리라 믿긴 어려운 일이다. 사라지라는 요구에 스스로를 지우는 사람은 없다.

희정 기록노동자·<베테랑의 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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