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생각과 반대로 씁니다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내용상 양심 불량이라는 말을 해야 했는데, 배우는 시나리오와 반대로 대사를 쳤다. 시나리오의 대사는 ‘그 사람은 분명히 양심에 털이 났어요’였다. 이는 한 영화감독이 들려준 일화다.
이 오류는 배우가 속담을 잘못 알고 있어서 빚어진 듯하다. 이와 달리 머릿속 생각과 반대로 글이 쓰이고 발행되는 실수가 적지 않다. 사례를 몇 가지 놓고 살펴보자. 어떤 단어나 문구가 정반대로 쓰였나 찾아보자.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흘러 넘쳤습니다’ 문장 중 ‘있는’은 ‘없는’으로 썼어야 했다. 참고로 필자는 이 글의 다른 부분에서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한 수많은 조문객들이 느슨한 관련성을 가지고 애도하는 그곳에서 하나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하나 더 있다. ‘이제 굽이굽이 이승으로 날아가시어 지극한 평화에 머무시기를 기원합니다’에서 날아갈 곳은 ‘이승’이 아니라 ‘저승’ 또는 ‘저세상’이다. 다음은 한 출판사의 책 소개글 중 두 문단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반대로 쓴 대목이 있다.
다음 문장이다. ‘그 후 일본은 고령자를 위한 운동을 개발해 지역 사회에 보급하여 현재 건강 나이를 10년 앞당기는 성과를 거두었다.’ 건강 나이를 ‘10년 앞당기는 성과’ 대신 ‘10년 연장하는’이라고 썼어야 했다. 작은 실수가 글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개조식을 비판한 다음 글을 읽어보자. 개조식은 글의 구조를 목차와 부호, 들여쓰기로 시각화한 형식을 가리킨다.
개조식은 시각화 형식이다. 이 점에 비추어 ‘문장 앞에 붙어 있는 네모와 동그라미, 그리고 이음표는 문장의 위계를 암시한다’ 중 ‘암시’는 ‘명시’의 오기인 듯하다.
원문 중 ‘파계승’의 뜻은 ‘계율을 깨뜨린 승려’다. 자기 통제력을 놓지 않는 사람은 ‘파계승’이 아니라 ‘정진하는 수도승’이다. 이를 두고 한 문인은 어느 정도 허용되는, 이를테면 ‘시적 자유’라고 해석했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사법이나 시적 자유가 구사될 자리가 아니라고 본다.
편집자는 원고 내용의 정확도 높여야
인용한 글은 대부분 편집자의 손을 거쳐서 나왔다. 일간지 편집자에 이어 단행본 편집자가 이중으로 본 원고도 있다. 아쉬운 점은 편집자가 적극 원고에 관여하지 않는 듯하다는 것이다. 편집자는 정확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따라 원고를 정리하는 일은 물론이고, 원고의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도 해야 한다. 내용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편집자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리는 곳이 번역 원고다.
외국어 전문가가 옮긴 한글 원고를 받아든 편집자는 번역 정확도는 일단 인정하고 원고를 다듬는 듯하다. 번역자를 섭외하고 결정하는 단계에서 번역의 정확도를 기했다고 전제한다고 짐작한다. 그러나 번역자도 사람이고,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한다. 그리고 실수 중에는 결과를 놓고 보면 황당하게도 원문과 반대인 사례가 간혹 보인다.
스파이 스릴러의 거장 존 르 카레가 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작전의 주역이 미끼가 되고 적이 아군이 되는 치밀한 두되 게임으로 전 세계에서 갈채를 받았다. 이 책 중 두 대목은 다음과 같다. 두 대목을 나타내기 위해 #1, #2를 표시했다.
리머스는 단구에 다부진 체격이다. 그가 다른 장면에서는 키가 크다고 번역됐다. 중년 주인공이 갑자기 키가 커졌을 리 만무하다. 원문은 ‘Lemas tall and straight like a soldier’이다. tall and straight는 straight and tall과 같은 뜻으로, 몸을 꼿꼿이 세운다는 뜻이다. 따라서 둘째 문구는 ‘병사처럼 꼿꼿이 서 있는’이 더 적합하다.
이 코너에서 필자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고쳐 보이는 내용을 자주 공유하고 있다. 원고 작성자와 편집 관계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이 자리를 빌려 인용된 글의 필자들께 해량을 앙망한다.) 일반 독자의 호응도 별로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원고 중 상당수를 이런 내용으로 작성해야 하는 당위성을 생각해봤다.
한 인물의 활동을 들어 설명을 대신한다. 이수열(1928~2021) 선생은 교직에 48년간 봉직한 뒤 퇴직 후에는 ‘우리말 지킴이’로 헌신했다. 신문에 실린 기사와 대학교수의 글에서 틀린 표현을 잡아내 편지로 보냈다. 1991년부터 기자로 일한 나는 다행인지 이 선생의 편지를 받지는 못했다. 이 선생이 정확한 문장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나는 글을 정확하고 전달력 높게 서술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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