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철학자의 첫걸음이다[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기자 2023. 12. 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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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intro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김무곤 교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중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다. 어떠한 용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읽기라니! ‘별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읽는 행위’ 위에는 시간이 나이테처럼 축적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 ‘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그 열다섯 번째는 이충녕의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도마뱀)다.



우리 집에는 두 명의 보살이 산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저녁마다 우리 집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다. 남편과 딸은 프로야구 만년 하위 팀인 한화 이글스를 꾸준히 응원하는 ‘보살’이다. 경기에서 지면 마치 자신이 감독인 양 전술의 허점을 꼬집으며 화를 내다가도, 다음 날 저녁에 어김없이 홈그라운드 1열, 즉 거실 TV 앞에 앉는다. 한화 이글스 보살들은 오랜 연패에도 지칠 줄 모르며, 시즌을 꼴찌로 마쳐도 실망하는 법이 없다. 다음 해에 최고의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며 ‘오히려 좋아’를 외치기도 한다.

하루는 어깨동무하고 응원가를 부르는 남편과 딸에게 매일 지는데 뭐가 그리 좋냐고, 진짜 행복 한 거 맞냐고 물었다. 딸의 대답이 가관이다.

“엄마,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행복한 거야? 점수가 나서 이기면 좋지만,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좋고, 야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데….”

혹시 인생 2회차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것을 추구하지만, 모든 좋은 것은 결국 행복을 가져다주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

철학자 이충녕이 쓴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에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좋음은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으로 우위를 따질 수가 없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 중에서 단연 좋은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먼 고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갈구하고 욕망해 왔다. 기원전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고자 했던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 19세기 공리주의가 말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서 행복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이었을까. 현대인들이 바라는 행복한 삶과는 얼마나 또 어떻게 다를까.

철학자들은 단지 하나의 개별적인 상황에서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정의인지를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행복 자체가 무엇인지, 보편적인 정의가 무엇인지를 따지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 진실인지에 관한 부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젊은 철학자 이충녕은 존재의 의미를 찾겠다는 포부로 철학과에 진학했으나, 존재의 의미는 정답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다가가기 어려운 철학적 이론이 아닌 일상적인 예시를 통해 마흔 명의 철학자를 우리 앞에 데려다 놓는다. 그는 인류가 어떤 철학적 사고의 여정을 걸어 왔는지 소개하며, 여기서부터 어디로 어떻게 생각을 뻗어 나갈지는 우리의 자유에 맡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주치는 모든 감정과 사건들, 이를테면 기쁨·슬픔·사랑·좌절·성공·행복 등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타인의 슬픔과 나의 슬픔이 다르고, 타인의 성공과 나의 성공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삶의 기준은 오로지 나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개개인이 모두 저마다의 철학을 갖고, 자기만의 삶을 꾸려 나가도록 우리를 그 출발선에 세워 놓는다.

삶의 의미 또는 존재의 의미가 흔들릴 때, 나보다 먼저 고민한 철학자들의 고뇌를 펼쳐 보는 것은 어떨까. 이충녕을 포함한 많은 철학자는 철학의 주된 임무가 삶에 물음을 던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이되,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일은 쉽지만 동시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지?’ ‘나는 언제 기분이 좋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어떤 일을 할 때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행위는 ‘나’와 ‘나’가 만나는 일이며, 그런 시간이야말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내가 ‘존재’하는 시간이다. 철학자라고 하면 대단히 거창해 보이지만,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바로 철학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김윤정(서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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