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국가 주권 넘어서는 동아시아 협력체제를 촉구한다
中 핵오염수 우려에 日 “국가주권”
우리가 탈북민 강제북송 항의하자 이번엔 중국이 “국가주권”
낡은 민족주의적 관념 버리고 인권·생명권으로 발상 전환을
박진 외교부 장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대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참석한 제10차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가 지난 11월 26일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회의는 2019년 8월 제9차 외교장관회의 이후 4년 만이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3국 외교장관회의는 “한·일·중 협력이 3국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도록 3국 간 실질 협력을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 그동안 동아시아 지역 전체 차원의 초국가적 협력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회의에서 열거된 6대 협력 분야 중 특히 ‘지속가능개발 및 기후변화’나 ‘평화·안보’는 더 오리무중이다.
회의 기간 중 별도로 열린 일·중 외교장관회의는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외교 당국의 정책적 차원에서 이 어려움을 풀기 어렵다는 데 있다. 후쿠시마 ‘처리수’ 대 ‘핵 오염수’라는 용어의 차이보다 더 큰 문제는 동아시아 3국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초국가적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이론적·사상적 기반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측은 ‘핵 오염수’의 안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각 이해 관계자들이 독립적으로 장기적인 감시 메커니즘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회담을 마치고 기자단을 만난 가미카와 일본 외상은 “국가의 주권, 국제원자력기구의 권위와 독립성의 원칙을 강조했다.” 중국의 초국가적 해법에 대해 일본은 국가 주권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원칙으로 응대한 것이다.
한반도를 마주한 황해 연안에 짓고 있는 수십 개의 원전에 대한 중국 정부의 기본 입장도 가미카와 외상의 입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국 당국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환경 문제를 고려해 국가 주권 못지않게 이웃의 생명권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것 같지 않다.
한편, 한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가미카와 외상은 서울고등법원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승소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은 한국의 법집행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권면제의 원칙이 그 밑에는 자리 잡고 있다. 인권에 대한 국가 주권의 신성불가침을 강조한 셈이다.
그에 앞서 지난 10월 30일 도쿄 고등법원은 재일 조선인 등의 북송 사업 피해자 4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4억엔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북한의 불법적 인권 침해로 발생한 침해 전체의 관할권은 일본에 있다고 판결했다.
가미카와 외상의 논리대로라면 이 역시 주권면제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만약 북한 정부나 친북 단체들이 북한의 통치행위는 일본의 법집행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항의해 온다면, 일본 정부나 가미카와 외상이 어떻게 반박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 거꾸로 서울고등법원의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을 대환영하는 한국의 좌·우 민족주의자들이 도쿄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하다. 두 판결은 국가 주권보다 초국가적 인권이 우선될 수도 있다는 판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 부산의 3국 외교장관회의로 돌아가 보자. 본회의에 앞서 오전에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의에서 박진 장관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중국 측의 역할을 당부하고 중국 내 탈북민 강제 북송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왕이 외교부장은 국내법·국제법·인도주의에 따라 적절히 처리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내법은 물론이고, 국제법 또한 국가들 사이의 법이니 중국의 주권을 존중하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중국의 신성한 국가 주권과 탈북민의 기본적 생명권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지난 5월 칼럼에서, 나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테크노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해결 방안을 촉구했다. 환경뿐 아니라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낡은 민족주의적 관념과 결별하고, 모든 사람의 인권과 생명권이 ‘우리’의 국가 주권보다 소중하다는 발상의 전환 아래 동아시아연합을 구상할 수 있는 초국가적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다.
21세기의 지구화는 상상력의 지구화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朝鮮칼럼] 반환점 돈 정부에 거는 마지막 기대
- 허벅지, 심장도 뚫는다… 발정기 사슴뿔 주의보 [방구석 도쿄통신]
- [김한수의 오마이갓]명동 한복판 ‘영성의 샘’
- [태평로] 포스텍의 ‘대치동 키즈’ 배제 입시 성공했으면
- [전문기자의 窓] 김문기 5쪽, 백현동 61쪽 판결문
- [수요동물원] 여우 면전에다 “푸슉~”...생생하게 포착된 ‘스컹크 공격’
- [하정우의 AI 대혁명] 여행 계획 알아서 짜고 예약까지 대행… ‘AI 에이전트’ 2년 안에 온다
-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70] 유명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 [김준의 맛과 섬] [216] 울릉도 오징어 누런창
- [김도훈의 엑스레이] [46] 금발이 너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