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대세 거슬러 지킨 자유민주주의… 이승만 삶을 배워야할 이유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 무대에서 내려온 지 어느덧 60년이 넘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가 하야한 뒤 태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삶은 우리에게 무슨 뜻을 지니는가?
이 물음은 “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물음을 부른다. 이 심중한 물음의 모범 답안은 아마도 “교훈을 얻기 위하여”일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얘기는 이런 견해를 대표한다.
그러나 방대한 역사에서 자신에게 절실한 교훈을 얻기는 쉽지 않다. 먼저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아야, 적절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폴란드 역사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지적했다. “우리는 처신이나 성공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 역사에서 배우는 근본적 지식은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얘기다.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19세기 중엽에 서양 문명이 밀려오면서,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치른 서양 문명이 워낙 우세했으므로, 우리의 전통적 문명은 빠르게 서양 문명으로 대치되었다. 이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원한 전통들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몇 백년 전 조선조의 우리 조상들은 우리를 몰라볼 것이다.
이승만은 개항 바로 전 해인 1875년에 태어나서 젊을 때부터 조선 역사의 중요한 현장들에 있었고 나이 들어선 나라를 이끌었다. 자연히, 그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의 눈에 들어온 사건들을 살피면, 우리는 우리 사회에 근본적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듬어낸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주의의 위협
이승만의 마음에서 늘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러시아의 위협이었다. 그는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를 실제로 경험하고 러시아의 실체를 깨달은 지도자였다.
러시아의 기원은 13세기부터 융성하기 시작한 모스크바 대공국이었다. 둘레의 다른 공국들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대공국은 몽골 제국의 일부인 킵차크한국의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의 공국들은 공(prince)이 다스리는 사회로 백성들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체제였다.
몽골 제국이 약해지자, 모스크바 대공국은 점차 흥기해서 러시아의 맹주가 되었고 끝내 유라시아의 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안으로 압제적이고 밖으로 팽창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1896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빠르게 커졌다. 러시아는 그런 영향력을 갖가지 이권들을 얻는 데에만 썼고 조선에서 막 시작된 개혁엔 적대적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승만은 안으로는 압제적이고 밖으로는 탐욕스러운 러시아의 전통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 세대 넘게 지난 1933년에 이승만은 협력적 관계를 맺으려고 소비에트 러시아를 찾았다. 국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중국 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천신만고 끝에 모스크바에 닿았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는, 약속과 달리, 접견을 거부했다. 당시 러시아는 만주의 동청철도(東淸鐵道)를 중국에 돌려주지 않고 일본에 매각하려 했는데, 그 일로 일본 협상단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었다. 일본의 비위를 맞추느라, 러시아는 이승만을 추방한 것이었다. 이 씁쓸한 경험에서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본질에 관해 깊이 깨달았다.
이어 1930년대 중엽에 기괴하고 음산한 ‘모스크바 재판’이 열렸다. 스탈린은 정적들을 숙청했을 뿐 아니라 고문과 위협으로 그들의 의지를 꺾어서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연출된 재판들’을 세계에 선보였다. 이 재판들은 헝가리 작가 아서 케스틀러의 위대한 정치 소설 ‘일식’에 생생하게 형상화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현대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의 중세적 체제에 소비에트 러시아의 전체주의 체제가 덧씌워진 사회임을 이승만은 통찰했다. 이런 통찰이 그의 큰 업적들 가운데 아마도 으뜸일 ‘얄타 협정의 비밀 협약’ 폭로를 가능하게 했다. 우연히 입수한 문서 하나로 그는 스탈린이 얄타 회담에서 꾸민 음모를 꿰뚫어 본 것이었다. 덕분에 한반도는 조선 사람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통째로 소비에트 러시아에 병합되는 운명에서 벗어났다.
러시아의 본질에 관한 이승만의 통찰을 미국 지도자들은 1940년대 중엽에야 비로소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자, 러시아는 갑자기 서방에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당혹한 미국 국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부대사인 조지 케넌에게 이런 변화에 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1946년 2월에 워싱턴에 보낸 ‘긴 전보(Long Telegram)’에서, 케넌은 러시아의 비타협적 팽창주의는 모스크바 대공국 시기부터 이어진 전통에 바탕을 두었고 공산주의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승만과 케넌의 견해는 근년의 러시아 역사의 지지를 받는다. 1990년대 초엽에 소비에트 러시아는 스스로 무너졌다. 그 잔해에서 여러 공화국들이 독립했는데, 주된 상속자는 러시아 공화국이었다. 이들 공화국은 모두 소비에트 러시아의 명령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택했다. 그렇게 소비에트 체제가 벗겨졌어도, 러시아는 여전히 안으로는 압제적이고 밖으로는 팽창적이다. 러시아의 가장 근본적 지층인 제정 러시아의 중세적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10년 전에 러시아의 크리미아 침공으로 시작되어 아직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제 러시아는 쇠퇴하는 나라가 되었다. 대신 소비에트 러시아의 전성기에 스탈린이 세운 위성 국가들인 북한과 중국이 세계의 자유주의 질서를 위협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승만의 삶은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무슨 교훈을 보여주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들려주는가?”
대한민국의 핵심적 특질은, 즉 정체성은, 인류 역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다. 우리는 1945년에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기 시작했고 1948년 이후엔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꾸려왔다.
반면에, 북한과 중국의 시민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러시아의 경험은 교훈적이다. 설령 북한과 중국에서 전체주의 체제가 무너지더라도,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중세적 전통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착을 어렵게 하고 팽창적 태도를 지니도록 만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정체성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를 외부의 지속적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코와코프스키의 말대로,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진정한 교훈이다.
이승만의 삶에서 배우는 교훈들
여기서 물음이 나온다. “우리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잘 아는데, 왜 굳이 이승만의 삶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살펴야 하는가?” 이 자연스러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는 나름으로 독특한 역사를 지녔고 그 역사의 관성에 따라 진화하리라는 사정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자라온 과정을 살펴야, 앞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 우리의 궁극적 과제인 북한 동포들도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도록 하는 일에선 특히 그러하다.
6·25 전쟁에서 나온 감격적 장면들 가운데 하나는 1950년 10월에 이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 시민들에게 연설한 일이다. 그때 그는 북한을 찾기 위해 미군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38선을 넘어 먼저 진격한 것이 한국군이고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워 평양에 먼저 입성한 것도 한국군이었지만, 미국은 북한에 미군 군정을 펴겠다고 고집했다. 북한과 한국은 별개의 국가들이며, 국제연합군이 점령한 북한은 국제연합을 대표한 미군이 군정을 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앞으로 북한 동포들도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는 우리의 간절한 희망이 만날 엄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북한의 압제적 체제가 무너져도, 중국만이 아니라 국제연합이나 미국도 남한과 북한은 별개의 국가라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사례는 한반도를 가로지른 38선·휴전선과 대만 해협이 지정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사정이다. 1949년에 ‘국공내전’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승리로 끝나고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밀려나면서, 동북아시아에선 대만해협으로부터 한반도의 38선·휴전선을 거쳐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의 소야(宗谷)해협으로 이어지는 선을 경계로 북쪽엔 중국, 북한, 러시아의 전체주의 세력이 자리 잡고 남쪽엔 중화민국, 한국, 일본의 자유주의 세력이 자리 잡았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화민국 장개석 총통은 군대를 파견해서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고심 끝에 그 고마운 제안을 사양했다. 중화민국의 참전은 곧바로 중공군의 개입을 부를 터였다. 그처럼 조심스러운 접근에도 불구하고, 결국 중공군은 북한군을 구원하기 위해 참전했다.
이 일화는 대만 해협과 한반도의 38선·휴전선이 처음부터 연결되었음을 일깨워준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기로 결정하면, 한반도는 다시 전쟁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대만 해협-휴전선-소야 해협으로 이어진 대치선의 북쪽 전체주의 세 나라는 모두 핵무기를 지녔다. 남쪽 자유주의 세 나라는 모두 핵무기가 없다. 지금 핵탄두 보유에서 러시아(5889기), 중국 (410기), 북한(30기)의 합계는 미국(5224기)보다 상당히 우세하다. 그리고 중국은 핵무기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사정이 그렇게 다급한데도,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다. 북한군이 많은 전차를 보유한 것을 알면서도 한국군에 대전차 무기조차 제공하지 않고 주한미군이 철수한 1949년의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1952년에 휴전에 반대하면서, 이 대통령은 ‘지금 휴전하면, 지쳐서 먼저 휴전 제의를 한 공산군이 기운을 차려서 다시 공격해올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상황이 그대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앞날에 맞을 상황을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서, 이승만의 삶은 소중한 교훈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기리는 일을 넘어 그의 삶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다.
연재를 마치며
그동안 졸고를 읽어 주신 독자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승만 오디세이’를 통해 이승만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이승만을 미화했다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위대한 인물의 경우, 실책이나 허물도 궁극적으로는 중요한 업적을 이룬 요소들이 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이승만이 너무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정 때문에, 그의 인품과 업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찬사로 느껴질 터입니다.
졸작 ‘물로 씌어진 이름’이 나온 뒤, ‘왜 그렇게 이승만에 매달렸는가?”라는 물음도 자주 들었습니다. 길 수밖에 없는 답변을 줄이면,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썼습니다.”
이승만은 우리 문단에선 ‘고압선’입니다. 만지면, 어려운 처지가 됩니다. 그래서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이승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모두 이순신이나 안중근이나 남로당처럼 안전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거의 스무 해 전에 남한 작가들이 단체로 북한에 가서 북한 작가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들은 북한 사람들이 짜 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면서 북한의 선전대로 하면 당장 평화 통일이 될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북한에 무슨 작가가 있나? 선전선동 요원들뿐이지. 만일 북한에 진정한 작가가 있다면, 그는 아오지 탄광이나 요덕 수용소에 있을 것이다.” 그 뒤로 저는 문단의 아웃사이더가 되었습니다. 친했던 문인들과도 서먹해졌습니다. 덕분에 저는 문단의 기류에 마음 안 쓰고 이승만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을 썼습니다.
짧은 글로 이승만의 업적을 살피다 보니, 중세 사회에서 태어나 현대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한 그의 신비스러운 면모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졸고가 계기가 되어 독자들께서 보다 충실한 글들을 찾아 나선다면, 저로선 보람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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