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잊고 지냈던 나림 선생과의 재회…깊고 넓은 숲의 울림이 찾아왔다

박하 시인 2023. 12.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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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금요일 저녁, 제2회 나림 이병주문학 콘서트에 다녀왔다.

마치 나림 문하 제자 넷이 의기투합하여 함께 콘서트를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나림 문학 속 아나키즘'을 발제한 조광수 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의 통찰은 빛났다.

이 주제와 관련해 지난해 국제신문에 조 전 회장이 '나림 문학과 아나키즘'을 연재할 당시 밑줄 쳐둔 문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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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콘서트 후기
박하 시인

‘눈뜬장님이 눈 뜨는 길/ 제 멋대로 도道 닦는 길/ 길을 잃어도 춤추고 싶은 길// 새살 돋고 허물 벗는 길/ 벽과 금기를 부숴 버리는 길/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길 (중략) 마침내 저승길까지 꽃등불 환히 켜는 길’ (졸시, ‘책 속의 길’ 일부, 시집 ‘하늘나무’ 2009)

지난 1일 열린 국제신문 주최 ‘나림 이병주 문학 콘서트’ 모습. 이원준 기자


지난 1일 금요일 저녁, 제2회 나림 이병주문학 콘서트에 다녀왔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림 선생과 재회한 기분이었다. 가슴 속에 절로 떠오른 게 위 졸시이다. 이병주 작가의 호 ‘나림(那林)’은 ‘어떤 숲’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 숲이 내겐 아주 깊고도 넓게 느껴질 뿐, 여전히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그 숲으로 통하는 수십 갈래 길 중에 어떤 길이든지 간에 좋다. 한번 들어 서기만 하면, 눈뜬장님이 눈을 뜨고, 제멋대로 도를 닦고, 때로는 길을 잃어도 겁나는 게 아니라, 춤추고 싶은 길이다. 물론 필자뿐만 아니라, 나림의 마니아도 같은 느낌이리라. 그날 저녁, 2시간 남짓 문학콘서트 내내 아주 흐뭇했다. 마치 먼지 폴폴 나던 내 마음밭에 흥건하게 단비가 내린 기분이랄까. 수 년 전 하동 이병주문학관에 처음 들렀을 때의 감동보다 갑절 이상이었다.

문학콘서트는 시종일관 흐뭇한 시간이었다. 마치 나림 문하 제자 넷이 의기투합하여 함께 콘서트를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사회자는 나림 품에서 응석을 부리는 듯한 조봉권 국제신문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 ‘나림 문학 속 아나키즘’을 발제한 조광수 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의 통찰은 빛났다. 이 주제와 관련해 지난해 국제신문에 조 전 회장이 ‘나림 문학과 아나키즘’을 연재할 당시 밑줄 쳐둔 문장이 있다. “흔히 나림의 ‘지리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비교한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아예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두 작가의 공력 차이다.…” 이 대목에 무릎을 쳤기에 그의 발제는 더 반가웠다. 두 번째 발제인 하태영 교수의 나림 선생과의 가상 문답은 또 얼마나 재기발랄했던가. 두 시간이 금세 지나고 말았다.

다만 참가자들 중 40대 이하 젊은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점은 못내 아쉬웠다. 웅숭깊은 나림의 세계관, 장자 맹자와도 맞짱 뜨는 내공은 AI시대에도 유효하다. 얼마든지 확산 가능하고 반향도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문자보다 영상에 더 친숙한 MZ세대를 위해 문학콘서트 기법의 변화도 시도하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나림(那林)’은 과연 ‘어떤 숲’일까? 그 숲이 대숲인지, 솔숲인지, 아니면 잡목 숲인지, 아마존 정글 같은 숲인지 여전히 나는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 참가한 뒤, 절절히 깨달은 사실은 지금이야말로 나림의 세계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만약 나림 선생이 하늘에서 지금의 시국을 보신다면, 어떠실까? 편 가르기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을 향해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어떤 주의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주의, 그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힘으로 되는 것이라야만 한다.” (이병주 ‘삐에로와 국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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