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년 유예한 중대재해법, 또 미루는 게 옳은 건가

경기일보 2023. 12.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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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다음 달로 예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2년간 더 유예하기로 했다. 현재는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아니지만 내년 1월27일부터는 유예 기간 종료와 함께 업종과 무관하게 적용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었는데 또 연기되는 것이다. 3년 유예에 이어 2년간 더 유예다. 중소기업은 반기는 분위기지만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회사가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숨질 경우 경영책임자인 사업주를 무겁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 2년 만인 2021년 제정돼 지난해 1월부터 상시 노동자 50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은 2년간 유예해 다음 달 27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당인 국민의힘이 지난 9월 ‘2년 추가 유예’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도 80만여개 대상 기업이 충분히 준비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적용되면 영세기업들의 폐업과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명분이었다.

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논의에 진척이 없었는데 입장을 선회했다. 최근 민주당은 ‘정부의 공식 사과와 유예 기간 중 안전확보 계획 수립, 2년 후 전면 시행 확약’이 전제되면 2년 유예를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야당이 결국 2년 유예에 합의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중대재해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 사망사고의 60.2%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644명 중 388명이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경영계 목소리만 듣고 법 적용을 미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소기업의 안전관리 역량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 적용을 유예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지난 3년간의 유예 기간 동안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기업 경영활동 위축을 염려하며 법을 개정하려는 정부 태도는 무책임하다.

80만 넘는 소규모 사업장들이 2년 뒤에는 충분히 준비됐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때도 ‘준비가 덜 됐다’며 추가 유예를 요구할 수 있다. 당정이 총선에 몰두하느라 정책을 후퇴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가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관리에 힘쓰라는 것인데, 정부가 기업 경영을 걱정해 법 적용을 미루자고 하는 게 옳은 건가.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약속과 정책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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