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은퇴한 친구를 생각하며

입력 2023. 12. 6.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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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내 친구는 은퇴자다. 20대 초반 은행에 입사해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친구에게 어떻게 소일하느냐고 안부 삼아 물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도서관에 나가 종일 필사한다고 했다.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이란 책을 필사한다는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가 가방에서 필사 노트를 꺼내면서 그전에는 니체가 철학자라는 것만 알았지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다고 고백한다. 필사하면서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는 그의 어깨라도 두드려주며 응원하고 싶었다.

 종일 도서관 나가 철학책 필사

요즘 은퇴란 아주 늙지도 젊지도 않은 모호한 나이에 불현듯 닥치는 인생의 통과의례다. 누구에게나 은퇴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당면한 현실 문제다. 은퇴 이후는 인생의 제2막이고, 그 시기를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은퇴란 평생직장에 작별을 고하는 의식이다. 그것은 제가 운전하던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하차하는 일이다.

경제활동의 종말이라는 점에서 은퇴는 그 본질은 실직이고,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의 상실이다. 은퇴자들은 경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일군 자산이나 연금 등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그걸로 충분치 않으면 은퇴 이후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한다. 준비 없이 노년을 맞았다가는 빠르게 경제적 약자로 추락할 수도 있다.

소년 시절 만났던 우리는 서로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원인 우리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이제 막 인생이란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 시기에 맞는 생물학적 퇴화는 피할 수가 없다. 늙음이란 퇴화라는 불치병을 앓는 시기고, 동시에 원숙한 지혜와 평화라는 선물을 받는 시기다. 많은 이가 기억력의 급격한 쇠퇴에서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의 부피가 줄고, 기억은 점점 종잡을 수가 없다.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은 “기억이란 아무 데나 드러눕는 개와 같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사적이거나 공적인 사건들, 사람들의 이름을 자꾸 잊는다. 기억은 삶의 연속성을 가능케 하는 토대지만 뇌의 노화로 인해 자서전적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어떤 기억은 영원히 지워지는 탓이다. 망각은 우리 뇌에 가지런한 질서를 이룬 채 정리된 기억들이 흐트러지면서 일어나는 사태다.

 젊음의 소란과 격류에서 벗어나

나는 처음 운전면허를 딴 지 마흔 해가 넘고, 문예지 신인 공모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지도 48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력을 쌓았다. 인생 순례지의 마지막에 다가서고 있으니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사회 전면에 나서서 혁신을 이끌고, 새로운 사업이나 기획을 펼치기보다는 고요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사는 게 더 자연스럽다. 겪어보니 늙음은 밝음과 어두움 양면을 다 갖고 있다. 내가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을 굳이 감추지 않는 것은 이것이 노년의 징표이자 젊음의 투쟁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받은 영광의 훈장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젊음은 거칠고 소란스러운 격류다. 그에 반해 노년기는 강의 하류같이 완만한 흐름을 유지한다. 청년기는 솟구쳐 타오르다가 꺼지는 불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젊음이라는 혼돈과 소용돌이에서 벗어난다. 제 삶에 정직하고 충실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젊음의 겉치레와 소란스러움, 가족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 노년기의 원숙함으로 지식과 기술, 자제력은 더 커지고 영감, 직관, 열정도 예전만큼 유지한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젊은 시절보다 실수를 덜 하고 시행착오도 덜 겪으며 더 분방한 활동을 펼칠 것이다.

한데 우리 사회는 젊음을 찬양하고 늙음의 가치는 깎아내린다. 그런 까닭에 다들 젊게 보이려는 세태의 영향으로 안티에이징 산업은 번창한다. 솔직히 젊음의 약동과 생기, 아름다움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왕관을 쓰지 않은 인생의 군주로 군림했지만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인생이라는 영지를 지배하는 군주의 권력을 상실한다. 젊음을 지탱하던 근육은 유실되고, 자서전적 기억의 상당 부분도 잃는다. 신체는 노화와 퇴행성 질병에 잠식당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체념과 무력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뿐이다.

 노년은 인생이 원숙해지는 시기

늙지 마라! 늙음이란 인생이 누추하고 비천해지는 것! 오늘의 세태는 우리에게 이런 가치관을 세뇌시키는 듯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젊은이들에겐 노년기의 경험이 없다. 그들은 격정이 있지만 경험 부족으로 잘못된 판단이나 선택을 한다. 그것은 지나칠 수 있는 젊음의 함정이다. 노년기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 얼룩진 젊음을 시난고난 통과하며 빚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년기의 원숙한 지혜는 오직 젊음의 시행착오와 실수의 경험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생의 풍부한 경험은 지혜가 생기는 데 필요한 자원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노년이란 젊은 시절의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시기는 아닐까? 은퇴 후에도 새로운 삶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 활기찬 인생을 즐기려면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고,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나날의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등산모임과 유적 답사하기, 독서 동아리, 자서전 쓰기 취미 활동에 참여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 충남 예산 출신인 내 친구는 고향에서 중학교를 나와 서울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은퇴한 뒤로 국회도서관에 나가 한 철학자의 책을 필사하며 한가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삶의 평화와 안정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

밝고 평온한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의 평온함은 실존적 고뇌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저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안정감과 정신으로 이룬 혁명의 열매다. 은퇴를 핑계로 자기 성장을 위한 투자에 게으르지 않은 내 친구에게 우정과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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