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전 직종 '수신료 징수'… 기자도 배치하나
수신료 징수, 경영직군만 해왔지만
수신료 사업소에 전 직종 배치 예고
20년차 이상 1770명은 '특별명퇴'
인건비 20% 삭감 등 고강도 긴축
KBS가 TV수신료 수입 감소 등으로 내년까지 총 34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1770여명 대상 특별명예퇴직 실시, 인건비 20% 삭감, 수신료 인력 재배치 등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이미 지난 7월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 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이 시행될 때부터 재정 악화가 전망돼 KBS 기자들 사이에선 이번 회사의 방침에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애초 새로운 경영진이 수신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보지 않았다”는 체념과 함께 “이제는 회사를 나가거나, 임금이 깎이는 것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무기력한 기류도 감지된다.
지난달 28일 KBS는 국·부장급 이상 190여명을 대상으로 ‘위기극복 워크숍’을 진행해 이 같은 방안을 알렸다. 해당 자리엔 박민 사장을 비롯해 이춘호 전략기획실장·주성범 인적자원실장·장한식 보도본부장·김동윤 편성본부장·임세형 제작1본부장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KBS는 한국전력공사와 수신료 징수 수수료 기준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분리 고지·징수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올해 수신료 수입은 연간전망(6823억원)보다 197억원 감소한 상황이다. 이춘호 실장은 이날 워크숍에서 내년 수신료 수입 결손액이 2627억원(결손 비율 30% 가정 시)이라고 예측했다. 수신료 징수액은 2106억원 줄고, 징수비용은 603억원 증가한 결과다. 올해 적자 802억원까지 감안하면 3400억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는 건데,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KBS는 2026년 자본잠식 상태가 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인력 및 인건비 축소’라는 추가 고강도 대책을 예고했다. 빠르면 이달 20년차 이상 직원 177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하고, 내년엔 인건비 20%를 삭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주성범 실장은 워크숍에서 “특별퇴직금은 공공기관 지침을 기본으로 하지만 별도 활성화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임금 고통분담분으로 한 위로금 지급 등도 검토하고 있다. 명예퇴직 결과와 재정악화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임금 축소 방침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기자들에게 충격으로 와 닿은 건 ‘수신료 인력 대규모 재배치’ 방안이다. 사측은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으로 민원 대응, 고지서발송 등의 업무가 증대될 것이라며 현재 163명보다 253명이 추가된 416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재정악화로 신규 인력 채용이 불가능 상황에서 가용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기존엔 경영 직군만 할 수 있었던 징수 업무를 ‘공통 직군화’해 전 직종을 수신료 사업소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부장급 이상 보직 경험자 시니어 인력 626명을 수신료 인력으로 활용하되 그래도 충원되지 않으면 상시 파견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KBS A 기자는 “동료 누구든지 수신료 징수 현장에 차출되는 게 현실로 이뤄지겠구나 싶어 참 씁쓸하고, 난감하다”며 “언론 노동자로서 근무 환경이나 조건이 나의 뜻과 달리 바뀌게 되는 부분인데, 우리가 기존에 하던 고유의 업무를 집중할 수 있는 조직이 더 이상 아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총국에 근무하는 B 기자는 “기자가 수신료 징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건 처음 나온 방침이고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며 “이전 지도부에서 뽑은 경력기자에 대한 인식은 어떨지, 또 회사 발표에는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거기서 느끼는 구성원의 불안감도 크다”고 말했다.
회사가 대책을 시행하는 와중 생길 수 있는 내부 갈등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C 기자는 “회사가 지금 상황에선 퇴직금을 많이 줄 수도 없는데 누가 손들고 나가겠나. 회사는 아마 목표를 채우지 못할 거고 다시 할당할 것”이라며 “나가야 할 동료를 감싸 안음으로써 월급 깎이는 걸 감당할지, 누군가를 쫓아내자고 말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언론노조 KBS본부는 워크숍 관련 성명을 내어 “대부분 긴축방안은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을 수반한다. 분명 과반노조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인데, 노동조합과 어떠한 논의도 없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이익 변경은 실정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신료 위기 대응은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낙하산 박민’이 오기 전 수신료 관련 부서 동료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방안에서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시행령이 못박은 ‘수신료 분리징수’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국토교통부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 다른 기관들과의 협조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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