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기 사퇴… 방송·포털 뒤흔든 이동관의 99일
지난 8월25일,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는 사진이 언론계에서 화제가 됐다. 이날로부터 꼭 99일째인 지난 1일, 이동관 위원장이 사퇴했다. 자진사퇴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대통령실의 뜻이란 분석이 주를 이뤘다. 이로써 이동관 전 위원장은 최단기 방통위원장이란 기록을 남기게 됐다. 법에 의해 ‘독립적 운영’과 3년 임기가 보장되는 방통위원장이 중도 사퇴하기는 다섯 번째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 두 번째 임기 도중 측근 비리 등을 이유로 사퇴했고, 보궐로 임명된 이계철 전 위원장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1년 만에 물러났으며, 문재인 정부 때인 4기 방통위의 이효성 전 위원장도 사실상 ‘경질’ 형태로 물러났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한상혁 전 위원장을 임기 3개월 남기고 면직한 데 이어 자신이 임명한 이동관 위원장까지 3개월여 만에 교체했다.
이동관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내며 얻은 ‘언론장악 기술자’란 별명에 부응하듯 취임 직후부터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앞서 후보자 시절 특정 언론·방송을 겨냥한 듯 ‘공산당 기관지’ 운운하고 YTN 기자들을 상대로 억대 손해배상소송과 형사 고소를 한 그는 취임사에서 ‘공영방송 개혁’과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언했고,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이 위원장은 취임 첫날 김효재 전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해임됐던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과 정미정 EBS 이사 후임으로 각각 김성근, 강규형 보궐 이사를 임명하는 등 취임 후 95일간 6명의 공영방송 이사·감사를 임명 또는 추천했고, 1명의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했다. 이 위원장 취임과 때맞춰 KBS 이사회의 김의철 사장 해임 절차가 진행됐고, 후임 사장 선임 과정에서 여권 측 이사가 사퇴하는 등 KBS 이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빠르게 보궐이사를 추천하며 박민 사장 선임의 길을 닦아준 것도 이동관 방통위였다. 그러나 이 기간 이뤄진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 2명 임명·해임 처분은 각각 법원에 의해 효력이 정지됐으며, 권태선 이사장 해임처분 또한 방통위가 연이어 소송에서 패소하며 재항고까지 간 상태다.
‘가짜뉴스와 전쟁’엔 더 거침이 없었다. 지난 9월1일 ‘김만배 인터뷰’와 돈거래 건으로 검찰이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자택 등을 압수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 전 위원장은 국회에서 “국기문란”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를 통한 “엄중조치”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을 언급했다. 며칠 뒤 취임한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뉴스타파 인용 보도를 중징계하며 보조를 맞췄다. 9월 한 달간만 해도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 패스트트랙 가동’, 네이버의 뉴스 알고리즘과 관련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사실조사 착수’, 방심위·포털 등과 ‘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 출범’ 사실 등을 알리며 그야말로 ‘열일’하는 행보를 보였다.
5인 정원인 방통위가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 포함 2인만으로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연이어 내리자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고, ‘가짜뉴스’ 대책 등과 관련해 위법·위헌 논란도 잇따랐다. 결국, 취임 18일 만에 직권남용죄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됐고, 73일 만에 국회에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이 위원장은 “부당하고 황당하다”고 반발하며 기존 행보를 이어갔다. 심지어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지는 보도전문채널 최대주주 변경승인 심사까지 폭넓은 의견 수렴 없이 속도전으로 해치웠다. YTN과 연합뉴스TV의 새 최대주주가 변경승인 심사를 신청한 지 각각 하루, 사흘 만인 지난달 16일 심사 기본계획을 의결하고 바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26일 심사를 마쳤다. 비록 지난달 29일 회의에서 승인 여부 결정은 보류했으나, 을지학원(연합뉴스TV)이 스스로 신청을 철회하고 YTN은 심사위 결론인 ‘승인’을 전제로 추가 자료 제출 및 점검만을 남겨둔 것이어서 ‘졸속·부실심사’라는 논란의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이 전 위원장 사퇴로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 홀로 남는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됐다. 후임 위원장이 임명될 때까지 이 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을 예정이지만, 1인 체제로는 중요한 심의·의결 업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YTN 최대주주 변경승인 절차도 해를 넘겨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달 31일로 재허가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KBS 2TV, SBS 등 지상파 방송에 대한 재허가 심사도 제때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연말 지상파 재허가에 이어 내년 3월 YTN·연합뉴스TV 재승인, 4월 채널A 재승인 등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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