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미 전직 외교관 결국 덜미 잡혀
1981년 국무부에 들어가
미국을 늘 “적”으로 불러
FBI 함정수사에 정체 탄로
40년 가까이 쿠바 정부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 미국 전직 외교관의 스파이 행위가 발각됐다. 국무부 소속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 볼리비아 대사, 미군 남부사령부 등을 거친 그는 쿠바 정부를 위해 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미 법무부는 4일(현지시간) 연방 검찰이 빅터 마누엘 로차 전 주볼리비아 미국 대사(73·사진)를 간첩 등 혐의로 체포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은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가장 고위급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침투한 사례”라고 밝혔다.
콜롬비아 태생인 로차 전 대사는 1978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1981년 국무부에 들어갔다. 연방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국무부 발령 첫해부터 최근까지 쿠바 정보기관 총첩보국(DGI)을 위해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 정부에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해외에서 쿠바 측 요원들과 만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2002년 국무부에서 퇴직할 때까지 도미니카공화국, 온두라스,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며 중남미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백악관 NSC에서 중남미 지역 담당 국장, 쿠바 아바나의 미국 이익대표부 부대표도 지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미국 정부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2006~2012년에는 쿠바를 관할하는 남부사령부 사령관의 자문역으로 일했다.
로차 전 대사의 스파이 행위는 첩보를 입수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비밀 수사관이 쿠바 DGI 요원으로 위장해 그에게 접근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FBI 비밀 수사관을 쿠바 측 연락책으로 믿게 된 로차 전 대사는 자신이 40년 가까이 쿠바를 위해 간첩으로 일했다고 실토했다. 또한 자신이 본부인 쿠바로부터 “정상적인 삶”을 살라는 지시를 받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익 인사로 행세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미국을 늘 “적”으로 지칭했고, 쿠바 내 정보원들을 “동지”라고 불렀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칭송하기도 했다. 쿠바 정권을 향한 충성도를 묻는 비밀 수사관의 질문에는 “그건 내 남성성을 의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성을 내기도 했다. 로차 전 대사가 어떤 정보를 쿠바 정부에 빼돌렸는지와 그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제공받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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