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다친 뇌...인지기능 회복할 수 있다, 어떻게?
외상성 뇌 손상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한 결과 뇌기능이 회복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4일(현지시간)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실린 미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내용이다.
낙상이나 자동차사고 등으로 인한 외상성 뇌 손상으로 인해 5백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영구적인 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은 간단한 작업에도 집중하기 어려워 직장을 그만두거나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제시하는 연구가 발표됐다. 연구진은 중등도 이상의 뇌 손상을 입은 5명의 뇌에 전극을 이식했다. 전극이 뇌를 자극하자 이들의 인지검사 성적이 향상됐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더 큰 규모의 임상 시험에서 유지된다면 임플란트가 만성 뇌 손상에 대한 최초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의 제1저자인 웨일 코넬 의대의 니콜라스 쉬프 교수(신경과)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추가 꿰진 것"이라고 말했다.
임플란트를 이식한 지원자 중 한 명인 지나 아라타 씨는 22살 때 자동차 사고로 피로와 기억력 장애, 감정 통제 장애를 겪었다. 로스쿨 진학을 꿈꿨던 그는 이후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캘리포니아 모데스토 부모님 댁에 얹혀 사는 신세가 됐다.
사고 후 18년이 지난 2018년 전극 이식수술을 받은 그녀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그는 "다시 일상생활이 기능해졌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가능해졌다"며 "내 자신이 발전하는 모습이 너무 놀랍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뇌 구조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치료법을 설계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가 작업에 집중하는 능력은 신경세포의 긴 가지로 연결된 뇌 영역의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 이들 영역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 전체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피드백 루프를 만든다.
따라서 자동차 사고나 추락과 같은 갑작스러운 뇌의 충격은 네트워크의 장거리 연결을 끊고 사람들을 혼수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이 세운 가설이었다. 회복하는 동안 네트워크는 스스로 전원을 다시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뇌가 심하게 손상되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연구진은 네트워크의 중요한 허브로서 뇌의 깊은 곳에 있는 구조를 찾아냈다. 중심외측핵(central lateral nucleus)으로 알려진 이 구조는 아몬드 껍질 정도의 크기와 모양을 가진 얇은 신경세포막이다.
인간 뇌에는 좌반구와 우반구에 하나씩 2개가 존재한다. 중심외측핵은 밤에는 잠을 잘 수 있도록 뇌를 진정시키고 아침에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쉬프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 부위의 뉴런을 자극하면 잠자는 쥐를 깨울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중심외측핵을 자극하면 외상성 뇌 손상을 입은 사람이 집중력과 주의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뇌에 정기적으로 전극을 이식한다. 이식된 전극에서 초당 수백 번씩 방출되는 작은 전기 펄스가 인접한 뉴런이 자체 신호를 발사하도록 유도하여 뇌의 일부 기능을 회복시킨다.
연구진은 2018년 아라타 씨처럼 사고 후 수년간 만성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지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전극을 삽입하기 전에 연구진은 지원자들에게 집중력과 작업 전환 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여러 가지 검사를 실시했다. 각각 문자와 숫자로 덮인 종이를 받고 가능한 한 빨리 순서대로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기호 잇기 검사(TMT)도 그중 하나다.
연구진은 실험 전에 각 지원자의 뇌를 스캔해 정밀한 지도를 만들었다. 스탠퍼드대 의대의 제이미 헨더슨 교수(신경외과)는 전극이 뇌 속의 중심외측핵을 자극할 수 있게 이식했다.
6명의 지원자에게 전극을 이식했지만, 그 중 한 명은 두피 감염이 발생해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수술 한 달 후부터 나머지 5명의 지원자가 후속 검사를 받았다. TMT 검사 점수가 15~5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웨일코넬 의대의 조셉 핀스 교수(의료윤리학)는 지원자들의 경험을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그 가족을 대상으로 일련의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지원자들의 지각능력이 크게 개선됐음을 확인했다.
논문을 검토한 벨기에 리에주대의 스티븐 로레이스 교수(신경학)는 이번 결과가 주의력과 다른 형태의 사고가 뇌 전체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며 "추가적 연구를 진행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쉬프 교수와 동료들은 뇌 임플란트에 대한 훨씬 더 큰 규모의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논문을 검토한 영국 옥스퍼드대의 알렉스 그린 교수(신경외과)는 중심외측핵만이 뇌 네트워크의 허브로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영역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도 "우리는 아직 자극을 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린 교수와 동료들은 뇌각뇌교핵(PPN)이라고 불리는 뇌 영역에 전극을 사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뇌 손상 이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1-023-02638-4)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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