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영국의 ‘완경 휴가 안 될까요’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노동시장 내 여성 차별의 주요 요인을 발견한 여성 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골딘은 임금과 노동시장 참여에서의 성별 격차, 여성의 가정에서의 역할과 커리어 변화 등을 오랜 기간 연구해 왔다.
골딘의 연구가 노동시장 내 구조적 성별 차별에 집중하여 여성노동 연구의 장을 열었다면 최근의 연구는 여성노동자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 및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영국에선 여성 노동시장 진출 증가와 인구 고령화가 맞물려 나타난 문제인 갱년기 여성노동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다수의 여성노동 연구가 결혼과 육아 등 여성의 커리어 초중반기에 집중되어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여성인권 NGO인 포셋 소사이어티(The Fawcett Society)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갱년기 여성의 10%가 직장을 그만두고, 완경 증상으로 인해 연간 약 1400만일의 근무일수가 손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연구와 정책 보고서들은 국가 단위의 정책과 조직 내 지원의 강화가 갱년기 여성노동자의 건강한 직장생활을 가능케 하며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노동시장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여성과 평등위원회(Women & Equality Committee)는 2022년 보고서와 권고안을 통해 정부가 공공 부문과 함께 유급 완경 휴가 정책을 시범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완경 휴가 정책의 운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시행의 어려움을 밝힌 바 있다. 대신 현재 영국 정부는 개별 고용주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을 택해, 고용주가 직장 내 완경기 정책 및 유연 근무와 같은 다른 형태의 지원을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완경 휴가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완경을 일반 병가 사유에 포함시키고 이를 근거로 인사팀에서 완경을 지속적인 건강 문제로 분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조직 내 갱년기 여성노동자 지원 강화에 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한 연구는 조직 내에서 같은 경험을 가진 동료와 산책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식의 비공식적 사회적 지원이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웰빙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완경이나 여성 건강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놓고 볼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 인식하고, 말할 수 있는 인식 개선의 창구가 필요함을 주장하는 연구도 있다.
여성노동자가 직장에서 갱년기 증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 노동시장 내 위치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글라스고 대학의 연구도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노동시장과 직장에서 이미 차별을 경험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 종사자는 완경기를 둘러싼 불평등이나 차별적 관행에 도전하는 제도 지원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우리나라 여성노동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강한 영향을 받는 집단으로 특히, 갱년기 전환기에 이른 중장년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형태에 종사하는 경향이 높다. 이들의 건강권을 어떻게 보호하고, 노동시장에서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적극적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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